통권 제15호 이슈

농촌 노인을 위한 노인일자리사업의 가치와 과제1)

김수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농촌거주노인 #노인일자리가치 #지역상생
고령자 사이에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이하 노인일자리사업)’의 인기는 꽤 높다. 매년 12월,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를 모집할 때가 오면 노인복지관이 문을 열기 전인 이른 아침부터 줄지어 기다리는 노인들의 모습을 목격하기 어렵지 않을 정도이다. 일종의 오픈런(open run)이 벌어지는 셈인데, 이날만큼은 평소 쓰던 지팡이도 집에 두고 달려온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린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노인일자리사업은 해마다 늘어, 2024년 기준 약 103만 개로 확대되었다. 전년보다 14만 7천 개 가까이 늘어난 수치이다. 관련 예산도 동 사업을 시행한 이후 최초로 2조 원을 훌쩍 넘었다.
노인일자리사업이 인기를 끌게 된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활동(일)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고령자의 신체 역량에 적합한 활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유지·확장할 기회를 얻는 한편, 생활에 보탬이 될만한 수입을 고정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자 대다수가 전체 노인의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의미는 더욱 크다. 노인일자리사업이 미비한 노후소득보장체계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규칙적으로 집을 나서 몸을 움직이니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라던가, “내 자신이 쓸모 있게 여겨진다.” 등과 같은 참여자들의 소감은 동 사업의 효과가 단순히 보충적 소득보전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노년기를 괴롭히는 무위, 고독, 빈곤, 질병을 포함한 ‘4고(苦)’를 예방하는 데 크든 작든 기여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22년 기준 전체 노인일자리사업량의 약 23%(204,420개)를 차지하고 있는 농촌에서도 노인일자리사업의 인지도는 도시 못지않다. 다만 그 필요성의 여부와 정도에 대해서는 안팎으로 이견이 있는 듯하다. 농촌의 노인일자리사업에 대해 연구를 한다고 운을 띄우면, 어김없이 “농촌에도 노인일자리사업이 필요한가요?”라고 되묻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나이가 들어도 움직일 수 있는 한 농사일을 쉬지 않는 농촌에서 굳이 노인을 위한 일자리사업을 예산까지 들여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의문일 것이다.
일면 이해도 가는 질문이다. 농촌 노인은 대개 70세가 넘어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동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평생 해온 일이라서’, ‘내 땅을 놀리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라는 이유가 더 크다. 그렇게 거두어들인 농산물은 타지의 자식들에게도 줄 수 있으니 퍽 보람도 된다.
이에 혹자는 농촌 노인에게 노인일자리사업의 필요가 그다지 높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농사일은 정년이 없는 탓에 고령자도 마음만 먹으면 일거리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농촌의 ‘일거리’라는 것이 실은 젊은 사람에게도 근골격계 만성통증을 유발할 만큼 체력적으로 힘들고 고되다는 점, 웬만한 강도의 노동 없이는 소득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 등이 간과되어 있다. 농촌 노인이라면 노화로 건강과 기능이 취약해지더라도 마땅히 농사일부터 해야 한다는 것일까?
한편, 농촌의 일각에서는 노인일자리사업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시선도 존재한다. 가뜩이나 농가에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괜히 일할 사람만 빼간다는 원성이 그것이다. 실제 일부 농촌 지자체는 코로나19 유행의 여파로 외국인 노동력의 유입이 급감하자 농업인력 부족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농번기 동안 노인일자리사업 운영을 제한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실상은 어떠할까? 3년마다 조사가 이루어지는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노인일자리사업에 대한 참여 수요는 도시와 농촌 노인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그림 1>. 노인일자리사업 참여 의향을 가진 노인의 비율이 도시에서 더 높게 나타나는 경향은 시간이 지나도 동일하게 유지되지만, 참여 의향의 꾸준한 증가세는 오히려 농촌에서 관찰된다. 도농 간 비율 차이도 최근에 올수록 감소하고 있는데, 농촌에서의 노인일자리사업 수요가 날로 증가해 이제는 도시에 버금가는 모양새다. 즉, 농촌 노인도 도시 노인만큼이나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
〈그림 1〉 노인일자리사업 참여 의향 추이 도농 간 비교
다시 농촌에도 노인일자리사업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보자. 동 사업 참여를 원하는 농촌 노인의 증가는 앞서 언급한 노인일자리사업의 순기능이 농촌에서도 다소간 발휘되고 있음을 추정케 한다. 이때 도시와 비교해 복지 기반이 전반적으로 열악한 농촌의 현실을 고려하면, 노인의 삶의 질 증진을 위한 멀티플레이어로서 노인일자리사업이 갖는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실제 노인일자리사업단이 돌봄 인력이 부족한 농촌에서 때론 참여자들 간 건강과 안부를 챙기는 돌봄공동체로 기능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농촌 노인들이 들려주는 “평생을 살아도 만나본 적 없는 옆 마을 노인을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해 사귀게 되었다.”거나 “노인일자리를 하느라 떡볶이를 난생처음 만들어 봤다.” 등의 참여 소회 또한 동 사업이 농촌 노인을 위한 교류의 장은 물론 새로운 경험의 기회까지도 제공하고 있음을 시사한다.2)
아울러 함께 주목해야 할 점은 농촌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의 평균연령이 75세를 넘어섰고, 그 가운데 80세 이상 노인의 비율은 꾸준히 늘어나 2022년 기준 약 27%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동 사업으로 인해 농업인력 부족이 심화된다는 우려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설사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초고령 노인에 해당하는 이들이 강도 높은 신체 노동을 장시간 요구받는 농업 임금근로자로 활동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3) 하물며 부족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몫을 대신할 수 있으리란 바람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농촌에서 노인일자리사업은 ‘잘’ 운영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직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농촌 수행기관 종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노인일자리사업의 많은 부분이 도시의 노인과 환경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농촌의 특성을 적절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예를 들어 농촌은 수행기관 한 곳이 담당해야 하는 지역이 넓어 사업단 관리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된다. 동시에 대중교통은 열악하고 도로는 불편해서 배후마을에 거주하는 노인의 접근성은 매우 떨어진다.4) 그럼에도 이러한 제약을 보완해줄 차량 지원이나 유류비 지원 등은 아예 없거나 충분치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농촌은 사업량 증가에도 수행기관 수는 오히려 감소해<그림 2>, 개별 기관이 체감하는 업무부담이 악화되었을 것으로 우려된다.
〈그림 2〉 농촌지역 노인일자리사업 수행기관 현황
나아가 노인일자리사업의 큰 방향성과 이를 설정하기 위한 과정에서도 농촌을 고려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노인일자리사업 중 공익활동의 비중은 줄이는 대신 사회서비스형이나 민간형 일자리 중심의 확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신노년세대 등 노인 특성의 변화와 사업의 지속가능성 담보 필요성 측면에서 볼 때 방향성 자체는 나무랄 데 없지만, 과연 농촌의 상황에도 적합 또는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예컨대 농촌은 공공·민간 기관이나 시설, 사업체 등 사회서비스형이나 민간형 일자리의 수요처가 될만한 자원이 부족한데다, 적은 인구로 시장이 협소해 소규모 판매장 등 시장형 사업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이는 수행기관이 사업단을 기획·발굴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벽에 부딪히는 원인이 된다. 게다가 상기 유형의 노인일자리에 두각을 보이는 시니어클럽 등 노인일자리사업 전문 기관이 없는 농촌 지자체가 드물지 않은 탓에, 농촌은 더욱 불리한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다.
결론적으로, 노인일자리사업이 농촌에서도 원활히 수행되어 그 장점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역 특성에 기초한 사업 방향의 설정, 그에 따른 일자리의 기획, 그리고 열악한 접근성 등 운영상의 불리함을 상쇄하기 위한 별도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구체적으로, 현재 농촌 노인일자리사업의 80%가 넘는 공익활동의 사업량 자체를 무조건 줄이기보다는 더 나은 노인일자리가 될 수 있도록 공익활동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도시와 달리 농촌은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민의 선의나 봉사에 기대는 경우가 잦다는 점을 고려해, 지역현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로 공익활동을 구성할 경우 지역과 상생하는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5) 이때 활동의 강도와 난이도에 따라 공익활동이 아닌 사회서비스형 사업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같은 노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주민공동체(주민자치회, 부녀회, 청년회 등) 등도 참여할 수 있도록 수행기관의 요건을 완화해 운영 여력을 확보하고, 지역과의 상생 노력을 평가하고 보상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요구된다. 아울러 농촌의 수행기관 종사자들이 쉽고 편하게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소통 채널과, 사업 관련 지침상 불합리함 등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창구를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농촌 노인을 위한 노인일자리사업은 단순한 일자리 제공을 넘어, 경제적 보탬, 사회적 활동의 유지·확대를 통한 건강증진과 고립 예방, 새로운 경험을 통한 삶의 활력 창출, 지역 문제의 해결과 필요 충족 등 다양한 측면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동 사업이 노인복지정책을 넘어 농촌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돕는 핵심 전략으로 적극 추진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농촌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사회의 상생과 발전을 이끄는 노인일자리사업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김수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1) 김수린(2021)의 연구를 주로 참고함.
2) 도시 노인과 비교할 때 과거에 경험한 사회·문화적 활동의 폭이 좁고 생애 경력도 다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노인일자리사업 참여는 농촌 노인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음.
3) 농촌 노인이 움직일 수 있는 한 손에서 놓지 않는 농사일이라는 것이 대부분 자기 소유의 땅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틈틈이 하는 형태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음. 이는 돈을 받고 남의 농사일을 하는 것과는 노동 강도, 노동 시간 등의 측면에서 차이가 매우 큼.
4) 많은 경우 농촌에서 노인일자리사업 수행기관들은 읍·면 소재지와 같은 중심지에 위치해, 배후마을에 거주하는 노인의 접근성은 크게 떨어짐.
5) 영농폐기물 수거, 농업정책/소식 안내, 독거노인을 위한 간편 집수리 지원, 건강예방·증진 활동 등 지역과 지역민의 수요를 바탕으로 다양한 내용의 사업을 기획할 수 있음.
참고문헌
• 김문정(2023). “농촌지역 노인일자리사업 현황과 개선과제”. 지역산업과 고용. vol.10:46-62.
• 김수린(2021). 《농촌 노인의 활동적 노화를 위한 노인일자리사업 개선과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각 연도). 《노인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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