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서정희·신권철·박경하·이영수·이한나·조광자·정승철(2021), 제5장의 내용을 일부 수정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독일은 정책연구에서 꽤 익숙한 국가이다. 독일이라고 하면 선진국, 안정적인 고용, 분절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이 우선 떠오른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진행된 일련의 하르츠(Hartz) 개혁으로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사회보장과 노동요건의 연계는 더욱 밀접해지고 있다. 특히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인구고령화는 여느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일 사회에 큰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독일은 1932년에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하였고, 1972년에는 고령사회, 그리고 2008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2021년 현재 독일의 고령 인구 비율은 22.09%인데(OECD, 2022), 고령화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은 독일 중·고령자의 삶을 고용과 사회참여의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중·고령자의 고용
인구고령화는 노인에 대한 정부의 재정 부담을 가중하고 이에 따라 경제성장을 둔화시키는 것으로 인식된다(OECD, 2019). 이에 다른 대부분 국가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중·고령자가 더 오랫동안 노동시장에 머물도록’ 하는 여러 가지 정책적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노동시장영역뿐만 아니라 소득보장영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OECD, 2019).
독일은 2000년대 들어 중·고령자 고용 관련 정책의 패러다임이 크게 변화하였다(김수린 외, 2020: 66). 1970년대 이후 높은 실업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기퇴직을 유도하던 것에서 조기퇴직을 막고 생애 근로기간을 연장하는 것으로 고용정책의 방향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실업 보장에서 소위 “58세 규칙”, 즉 58세 이상의 실업자에게 실업급여(Ⅰ, Ⅱ)의 수급요건인 구직활동 의무나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에의 참여 의무를 면제해 주던 것을 2007년 폐지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2017년 유연 연금(Flexi-rente) 개혁은 실업급여Ⅱ 수급자인 고령(장기) 실업자가 조기퇴직연금의 수급 자격(63세)이 생기는 즉시 조기퇴직연금을 청구해야 한다는 조기퇴직 의무를 폐지하였다(OECD, 2018: 5). 이러한 조치들은 중·고령자가 실업급여나 조기퇴직연금을 통해 조기에 노동시장에서 퇴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경우, 한때 50대 이상 중·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으나 현재는 중·고령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없는 상황이다. 다만 취약 집단을 표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중·고령자가 포괄되는 식인데(OECD, 2018: 6), 특히 「고용촉진법」(사회법전 제3권, SGBⅢ)은 고용 촉진, 직업훈련, 고용서비스를 포괄하는 다양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2019년 현재 독일은 100여 개의 노동시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주된 대상은 등록된 실업자 및 구직자이다(Eurostat, 2021). 중·고령자의 고용 촉진과 관련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노동의 새로운 질 이니셔티브”(Initiative Neue Qualität der Arbeit, INQA), “기업가치-사람 프로그램”(UnternehmensWert Mensch), “WeGebAU 프로그램”(Weiterbildung Geringqualifizierter und beschäftigter Älterer in Unternehmen) 등이 있는데, 이들은 중·고령 근로자를 직접 지원하기보다는 이들을 고용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들이다. INQA와 기업가치-사람 프로그램은 기업이 중·고령 근로자를 채용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기업 차원의 모범 사례를 수집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며, WeGebAU 프로그램은 저숙련 근로자 및 45세 이상 중·고령 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향상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주보혜 외, 2019).
한편 생애 근로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노력은 연금제도에서도 진행되었다. 2008년 시행된 「연금수급개시연령조정법(RV-Altersgrenzenanpassungsgesetz)」은 법정 연금보험의 노령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상향 조정하였는데, 이에 따라 일반 노령연금의 수급 개시 연령이 기존 65세에서 2012~2029년에 걸쳐 67세로 상향 조정된다(BMAS, 2020). 참고로 2022년 현재 수급 개시 연령은 65세 11개월이다. 일반 노령연금의 수급 개시 연령이 곧 법정 퇴직 연령인 독일에서 수급 개시 연령을 높이는 것은 퇴직 시기를 늦추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가 노동시장 자체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독일 중·고령자의 고용 상황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이들의 경제활동참가율, 고용률 그리고 실질 퇴직 연령이 모두 10년 전에 비해 높아졌다. 이는 더 많은 중·고령자가 더 오랜 기간 노동시장에 머물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들의 실업률 및 장기실업률은 10년 전에 비해 낮아진 수치를 보이는데, 이는 실업급여의 요건이 강화되는 한편 유연한 일자리를 통해 더욱 수월하게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고령자의 사회참여
인구고령화로 인해 중·고령자의 다양한 사회참여도 중요해지고 있다. 은퇴 이후의 삶이 길어진 상황에서 사회참여는 중·고령자의 삶의 질이나 웰빙 같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물론 중요하지만(Ghazi et al., 2017), 특히 자원봉사처럼 타인을 위한 활동은 그 활동으로 도움을 받는 이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등 사회 통합에도 기여하게 된다(BMFSFJ, 2019).
독일의 중·고령자들은 무보수 명예직(Ehrenamt) 제도와 노인사무국(Altenbuero)을 통해 다양한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노인사무국은 1992년부터 자기 책임하에 지역사회의 일을 돕기 위해 시작된 노인자체결성 조직이며(이윤경, 2012: 92), 명예직 활동은 원래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명예롭고 자유로운 공직 활동을 의미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이에 대한 소득 보전 및 세제지원이 보편화되어 있다(김영미, 2015: 36, 55). 또한 중·고령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일은 정부 차원에서 2011년 7월부터 연방자원봉사제도(Bundesfreiwilligendienst, BFD)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나이 제한이 없어 의무교육을 마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참여자에게는 활동기간 동안 용돈과 활동에 필요한 비용이 지급된다. 이 외에도 사회보험 혜택, 노동법적 보호, 특별 손해 배상, 자원봉사 증명서, 교육 기회 등이 주어진다(BAFzA, 2021; 김영미, 2015).
〈표 1〉 독일 중·고령자의 고용 상황
이처럼 독일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자원봉사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민간의 자원봉사활동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을 지원하는 등 자원봉사를 민간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또한 자원봉사자를 근로자로 간주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보험 혜택 및 노동법적 보호를 제공하고 있는데, 연방자원봉사제도의 경우 참여자에게는 사회보험 혜택이 의무적으로 주어지고 사회보험료는 전액 연방정부가 부담한다. 특히 산재보험은 명예직 활동이나 일반적인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경우에도 의무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박귀천, 2015).
"노동시장에서 직업훈련의 기회가 확대된 것과
더불어 시민대학이나 청강생제도 같은
전국적 인프라를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교양을 쌓을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정책을 바탕으로 독일 중·고령자의 자원봉사활동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 연방가족부(BMFSFJ)가 실시하는 ‘독일자원봉사조사’(Deutscher Freiwilligensurvey, FWS)에 의하면, 65세 이상 연령대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1999년 18.0%에서 2019년 31.2%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들 중 22.2%는 주당 6시간 이상을, 25.8%는 주당 3~5시간을 자원봉사활동에 사용하고 있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많은 시간을 자원봉사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BMFSFJ, 2019).
사회참여의 또 다른 영역인 평생교육에서도 독일은 좋은 제도들을 갖추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시민대학(Volkshochschule, VHS)은 공립기관으로서 저렴한 수강료로 시민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거의 모든 지역의 시민대학이 중·고령자를 위한 별도의 페이지를 마련해둘 만큼 중·고령자를 위한 강좌가 잘 구비되어 있으며(김수현, 2018: 12), 본원과 지부를 합해 전국적으로 약 4,000개의 접근지점을 갖추고 있는 등 접근성도 좋다(VHS homepage). 그리고 대학들이 일반 강의를 시민에게 개방하여 저렴한 수강료로 청강할 수 있는 청강생 제도도 있다. 대학은 정기적으로 노인을 위한 청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일부 대학에서는 일반 학생과 동일하게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현재 베를린 자유 대학을 비롯한 대부분의 종합 대학에서 노인 청강생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노인을 위한 교과목이 개설된 대학은 약 50개에 달한다(조선아, 2018).
이처럼 독일에서는 시민대학이나 청강생 제도를 통해 중·고령자들이 평생교육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들 제도는 모두에게 열려있으며 지리적으로도 접근성이 좋고 수강료 또한 매우 저렴하다. 또한 프로그램의 내용이 다양하고 시대상을 반영하여 변화함으로써 사회적 요구에 긴요하게 대응하고 있다.
중·고령자의 사회참여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는 독일 중·고령자의 고용과 사회참여의 모습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비단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국가를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만큼 중·고령자의 고용과 사회참여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사례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독일 사례를 통해 동 사업에 대해 제언하고 싶은 점은 중·고령자의 사회참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중·고령자의 활발한 사회활동은 정부 및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중·고령자가 많이 참여하는 자원봉사나 명예직 활동은 금전적 혜택(세제 혜택 포함)과 사회보험 혜택 등을 통해 연방정부 및 주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평생교육에 대해서도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직업훈련의 기회가 확대된 것과 더불어 시민대학이나 청강생제도 같은 전국적 인프라를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교양을 쌓을 기회를 제공한다.
독일은 자원봉사나 평생교육이 노인에 특화되어 있다기보다는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물론 이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지향해야 할 방향이겠지만, 현재 여건에서 당장 실현하기 어렵다면 중·고령자의 사회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우선 다양한 사회참여를 인정하고 있는 동 사업의 지원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 사업이 실질적인 소득보장의 역할로 인해 참여 자격이나 참여 횟수에 제약을 둠으로써 많은 이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배우는 일에 대한 지원이 전무한데, 교육이 사회참여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임을 고려할 때 배우는 일에 대한 지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조광자
군산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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