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일자리법안들의 슬픈 운명
2009년 이후 지난 12년 동안 국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12개에 달하는 노인일자리 관련 법률안이 국회의원들에 의해서 발의되었다. 그러나 2020년 20대 국회까지 9개의 노인일자리 관련 법률안이 국회 임기만료로 모두 폐기되었다. 2022년 5월 현재 21대 국회에도 3건의 노인일자리 관련 법률안이 계류 중에 있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안들도 앞서의 것들처럼 2024년 국회임기만료로 폐기되어야 하는 슬픈 운명에 처해질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궁금한 것이 있다. 왜 저 법률안들은 지난 10년 넘게 그렇게 많이 발의되었으면서도 정작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게 된 것인지? 치열한 정치적, 경제적 대립이 있는 법안도 아니다. 국회의사록에는 정부나 국회의원들 모두 대체로 입법취지에는 공감한다는 취지로 써 있고, 현재 노인일자리 사업에 이미 수 조원의 예산이 지원되고 있어 별도의 추가 예산이나 인력이 드는 법안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지속적인 입법실패의 실마리는 1991년 제정된 고령자고용촉진법(2008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로 법명칭이 변경되었다. 이하 ‘고령자고용법’이라고만 한다)에서 찾을 수 있다. 30여 년 전 만들어진 고령자고용법이 21세기에 태어나야 할 노인일자리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노인일자리법안은 태어나 빛을 발하기도 전에 고령자고용법으로부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고령자고용법을 달리 풀어쓰면 노인일자리법인데, 보건복지부가 담당해야 할 노인일자리법은 뭐가 다른가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노인일자리법안은 결코 법률이 되지 못한다. 태어나지 못할 슬픈 운명에 처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고령자고용법을 달리 풀어쓰면
노인일자리법인데, 노인일자리법은 뭐가 다른가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노인일자리법안은 결코 법률이 되지 못한다."
답하라.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달라야 하는지
먼저, 고령자와 노인은 다른가? 다르지 않다. 나이 많은 사람을 문어체와 구어체로 표현한 것일 뿐 의미는 동일하다. 고령자고용법에서는 55세 이상을 고령자로 삼고 있지만 노인일자리법안은 대체로 60세 또는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삼고 있어 연령대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정책적인 것이어서 서로 대상이 다른 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고령자고용법의 입법목적이나 기존에 발의된 노인일자리법안의 목적은 모두 고용촉진(일자리창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서로 목적이 다른 법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고령자고용법과 노인일자리법안이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실은 현재 계류 중인 노인일자리법안은 스스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과는 다른 자신의 특성을 법안에 숨기고 있다. 그것은 바로 노동법상의 ‘근로자’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현재 계류 중인 노인일자리법안들 중에는 노인공익활동사업이나 노인경륜활동사업에 참가하는 노인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지 아니하고, 노인일자리와 구분된 노인사회활동을 지원하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고용(일자리)이 담을 수 없는 다른 영역, 즉 시장노동의 바깥세계를 암시하는 것들이다.
고용(雇傭)이란 품을 팔고 사는, 즉 시장노동을 하여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되는 것이다. 시장은 노동을 상품처럼 팔게 되는 공간이어서 그 가격이 다양하고, 제 값을 못 받을 수도 있으며, 능력이 없으면 마치 안 좋은 물건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시장은 합리적 이기심으로 운영되고, 법은 희로애락을 모르지만 사람은 끼니를 거를 수 없고, 늙고 병든다. 시장과 법은 인간이 가진 희로애락과 생애에 맞추어 조정되어야 한다.
고령자고용법은 연령을 이유로 고용에서 차별당하지 않고, 고령자를 지원하여 고용이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가진 법이다. 즉, 고령자를 시장노동에 편입시키고, 시장노동 속에 유지하고자 하는 법이다. 그러나 시장의 현실은 그에 구애됨이 없이 작동한다. 고령자고용법이 2013년 정년을 60세로 정하여 장기고용을 유도하고 있음에도, 장년층은 50대 초반에 권고퇴직한다(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96면 참조). 그것은 시장에서 자생하는 시장 내에서의 현실적 퇴출 압력이라 할 수 있다.
노인일자리법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어느 보고서와 신문기사에서는 노인일자리사업이 고용사업이 아니라 복지사업처럼 운영되고, 단기의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고용)통계에 넣어 고용상황을 왜곡시킨다는 비판을 한다. 더 나아가 국가의 노인일자리사업을 이른바 ‘세금으로 만든 노인알바’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노인일자리를 위와 같이 시장에서의 고용만으로 편협하게 이해한다면 노인일자리법은 고령자고용법과 중복될 수밖에 없다.
노인일자리법이 노인일자리를 포함한 사회활동을 통해 시장에서의 고용을 넘어서는 다른 것을 추구하고, 시장 바깥에서 노동의 호혜적 교환방식을 고민한다면 고령자고용법이 해낼 수 없는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달성할 수 있다.
"노인일자리법이 노인일자리를 포함한
사회활동을 통해 시장에서의 고용을
넘어서는 다른 것을 추구하고,
시장 바깥에서 노동의 호혜적 교환방식을
고민한다면 고령자고용법이 해낼 수 없는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달성할 수 있다. "
노인일자리정책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노인일자리정책을 국가가 접근하는 방식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다. 하나는, 고령화에 따른 사회정책 중의 하나로 인구대응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인구대응정책이란 인구를 직접적으로 조절하려는 정책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인구에 맞추어 생존과 복지를 위한 제도를 개선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기존의 노동정책 중의 하나인 실업정책으로서 노인일자리를 접근하는 것이다. 정년이나 고령 등으로 일자리가 없는 노인에게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참가할 기회를 제공하고, 임금을 통한 개인적 소득과 사회적 생산성 유지를 주목적으로 한다. 이는 한 개인에게 개별적으로 근로관계를 형성시켜 사용자라고 하는 임금과 복지의 제공자를 만들어 준다. 이는 시장노동의 관점에서 노인일자리를 접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법제화한 것이 고령자고용법이다.
마지막으로 일자리가 사회적 관계와 가치를 형성하는 장소라는 관점에서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노인에게 복지대책 중의 하나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시장노동을 통해 임금을 받고,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르게 노인에게 공동체 내에서 역할을 부여하여 삶의 안정과 관계의 유지를 주된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정책적 목적을 입법화하는 것이 노인일자리법이다.
"노인일자리법은 공동체에서의
노인의 역할을 고민하여야 한다."
노인일자리법은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
노인일자리법은 먼저, 노동의 호혜적 교환방식을 고민하여야 한다. 상상해 보자. 노인일자리 예산이 0원으로 되었을 때에도 지속할 수 있는 노동의 호혜적 교환방식은 어떤 것이 있는지? 과거의 것들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보면 계와 품앗이 등을 들 수 있다. 집단적 노력(勞力)을 통해 공동체나 개인의 어려운 문제를 해소하거나(품앗이), 금융기관 없이 자산을 형성하거나(순번계), 금전적 이해관계가 아닌 친목을 도모하거나(친목계), 장례 도움을 받았다(상포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제공한 노동이나 금전이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과 그 믿음을 보증해 줄 수 있는 공동체의 지지이다. 현금은 국가의 보증 없이는 휴지조각이고, 지역화폐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보증 속에서만 유지된다. 시장은 노동에 가격을 매기지만 국가는 시장 바깥의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호혜적 교환을 보증해야 한다. 예컨대, 마을의 한 노인이 이웃의 다른 아픈 노인을 돌볼 때 국가는 그 증표로 포인트를 부여하고, 그 노인은 자신이 아플 때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고 그 포인트를 제공한다. 국가가 이 포인트의 순환이 가능하도록 보증하면 이 돌봄의 순환은 끊이지 않을 수 있다.
노인일자리법은 다음으로, 공동체에서의 노인의 역할을 고민하여야 한다. 지금은 노인이지만 생애를 통해 가족공동체 내에서는 자녀로서, 배우자로서, 부모로서, 일터에서는 자신과 타인을 위한 노동에 참여해 왔고, 지역공동체인 마을에서는 친구와 선후배로서 사적인 관계들이 시간에 비례하여 쌓여 있다. 그 공동체 내에서 하는 노동은 모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반드시 금전으로 보상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호혜적으로 교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시행하고 있는 노노케어, 취약계층지원, 공공시설봉사는 공익활동으로 시장노동에서의 근로자는 아니지만 활동비(월 30시간 이상, 27만 원 한도)를 지급받는다. 이러한 활동비는 임금(월급)이 아니고, 국가가 마련한 예산에서 현금 형태로 지급된다. 과거 취약계층의 자활(취로)사업에서는 쌀(양곡)을 지급하였다. 이러한 형태의 활동비는 현금(양곡)과 노동의 거래처럼 생각되어 마치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처럼 인식되고, 취급당한다. 지역화폐를 제공하여도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는 사실상 현금으로 환가될 수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의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은행계좌처럼 노인의 노동(공익활동이나 봉사활동)에 포인트를 부여하는 계정을 만들어, 그것을 생애를 통해 적립할 수 있게 하고, 그 포인트로 교환할 수 있는 것들(예컨대, 건강보험료, 통신비, 의료비, 교통비, 자신과 가족의 돌봄비용 등)을 정해 놓는다면 그것은 시장노동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위와 같은 것들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단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예컨대 현행 국민연금법은 군복무나 출산, 입양에 연금기간을 추가하는 혜택을 주는데, 이러한 방식은 군복무, 출산, 입양에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부여한다. 위와 같이 받은 포인트 혜택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받는 복지포인트에서 그 사용방식을 참조해 볼 수 있고, 최근 여러 유형의 민간에서 만드는 각종 00페이도 참조할 수 있다. 시장노동에서는 임금을 현금으로 받아야 하지만 노인일자리법이 만드는 일자리와 사회활동에 대해서는 시장노동의 바깥에서 사회적 가치를 부여받은 일들을 하고서 그 보상으로서 화폐로서의 임금이 아닌 다른 것(여러 서비스나 물품을 구매하거나 할인 또는 감면받을 수 있는 통합바우처 포인트)을 받도록 하고, 그것을 자신의 돌봄과 생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면 그것은 고령자고용법과는 차원이 다른 목적과 운영방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을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해야 한다.
신권철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