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의 정함에도 불구하고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를 함께 담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 시행되었다. 이에 고용노동부를 필두로 소방청,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에서도 각각 중대재해에 관한 해설서를 내놓았고, 검찰에서도 자체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벌칙해설서를 만들어 일선 검찰청에 배포하고 있다. 학계와 실무 영역에서도 다양한 법 해설서를 발간하고 있어 관련 정보가 넘쳐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법 해석 여지가 많고 또한 현장에서 접목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현상이라 할 것이다. 노인일자리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의 부담도 적지 않은 듯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 - ‘중대산업재해1)’를 중심으로
통상 노동관계법령은 해당 법 상 ‘사용자’에게 법규의 준수의무와 그 위반에 따른 책임을 부과하고, 원칙적으로 그 보호의 대상을 근로계약관계를 맺은 ‘근로자’로 범주화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①‘사용자’란 사업주 또는 사업경영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 ②‘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개념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은 동 법을 준수해야 하는 주체를 ‘사업주2) 또는 경영책임자3)’라고 규정함과 아울러 그 보호의 대상도 ‘종사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어 기존의 노동법적 관점에서는 다소 낯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때 ‘사업주’는 개인 사업주 혹은 법인 사업주를 의미하여 주체 측면에서는 기존의 개념 해석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으나 ‘경영책임자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어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동 법은 그 보호 대상인 ‘종사자’에 관하여 일반 노동법령에서 말하는 ‘근로자’보다는 범주를 넓혀 ‘계약유형을 불문하고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겠다는 명확한 의지를 담아 천명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필자는 아래에서 살펴볼 검토사항과는 별개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관련 법령에서 정하는 보호조치 의무를 다하도록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기존 노동관계법령의 취지와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며 그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人)이 스스로 지켜야 할 바(예방)와 이를 지키지 못했을 때에는 특별히 강한 책임(처벌)이 뒤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본다.
"누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정함에 따른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 및
그 위반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으로 보아야 할까?
답을 내어 놓기 위해서는 노인일자리사업
전달체계의 특수성을
먼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노인일자리사업 수행기관(장)과 「중대재해처벌법」
노인일자리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의 입장에서, 누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정함에 따른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 및 그 위반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으로 보아야 할까? 답을 내어 놓기 위해서는 노인일자리사업 전달체계의 특수성을 먼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노인일자리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 독자적인 법인(法人)으로서의 권리능력을 갖추고 동 사업을 수행하는 경우는 전무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며, 다음 장의 그림과 같이 대부분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른 사회복지법인 외 사단법인, 시설관리공단, 지자체 등과 같은 ‘모법인(母法人)’을 사업 수탁자이자 법적 관계의 정점에 두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모법인도 단종의 복지사업만을 행하는 경우보다는 아동, 장애인, 자활 등 사회복지영역의 사업을 다양하게 수탁, 직영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노무자문을 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또는 노인일자리사업 수행기관 역시 아래 그림과 같은 구조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노인일자리사업의 대표적 수행기관인 시니어클럽4) 만 보더라도 별도 사업자등록번호, 사회보험관리번호를 두는 사업단(주된 사업내용은 제조, 서비스 등)5)을 통해 적게는 수 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참여자와 근로 및 도급계약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 구조는 대체로 왼쪽 그림과 같다.
이와 같은 경우 누가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정하는 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며, 또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소홀히 하여 수행기관 내에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누가 (혹은 함께) 처벌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정함에 따라 원칙적으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모법인과 법인의 대표자로 봄이 타당하다. 현재 대부분의 노인일자리사업 수행기관은 ‘사업주’가 될 수 없으며 동 법에서 정하는 의무를 위반하여 사상자를 발생시킨 책임은 법리상 ‘경영책임자’가 존재하는 해당 법인에 귀속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모법인으로부터 직접 채용되어 모법인의 타 업무를 담당하다가 수행기관의 장(기관장)으로 보임된 직원을 ‘경영책임자’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이는 장소적으로 분리된 곳에 제조업 공장을 설치하여 관리자인 현장소장이나 공장장을 둔, 일반적인 영리 회사에 적용하는 법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볼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보직순환의 모양새로 작동하는 사회복지법인이 아니라, ①사회복지법인은 외형상 사업수탁자로서의 법적지위만 유지한 채 소수의 사무국 직원으로 운영되며 ②법인은 개별 복지사업의 수행기관, 시설에 관여하지 않고 수행기관과는 각각 독자적인 체계에 따라 행정, 예산 및 세무회계, 인사노무 등을 분리하여 왔으며 ③수행기관의 기관장은 각 사업의 지침 등에 정하는 바에 따라 별도 임명되어 기관의 사업을 개별적으로 총괄 운영하여 온 경우라고 하더라도 동일하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있게 된다.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처벌법 해설(2021.11.)”은, ①하나의 법인에 두 개 이상의 사업이 있고 각각의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가 있고 각 사업 부문이 독립성(조직, 인력, 예산 등 경영의 독립성)을 가지고 분리되어 있어 별개의 사업으로써 평가될 수 있는 경우에는 각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 해당 사업 부문의 경영책임자에 해당하나 ②다만 여러 사업 부문을 총괄하는 차원에서 해당 부문의 경영상 중요 의사결정을 총괄대표가 하거나 부문별 대표와 공동으로 행사하는 경우에는 법인 내에서의 직위나 직무, 실질적 권한 행사 등 의사결정 구조에 따른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업을 총괄하는 대표가 경영책임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모법인이 적극적・주도적으로 산하 수행기관을 포섭하여 「중대재해처벌법」 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한) 모법인과는 별도로 독립성을 강하게 갖는 대부분의 수행기관은 그 기관장이 ‘경영책임자’ 또는 적어도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해야)하는 사람’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최소한 동 법에서 정하는 아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①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그 이행에 관한 조치
②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③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
④ 안전, 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동 법 시행령에서는, 특히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과 이행에 필요한 사항을 다음 9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① 안전, 보건 목표와 경영방침의 설정
② 안전, 보건 업무를 총괄, 관리하는 전담 조직 설치
③ 유해, 위험요인 확인 개선 절차 마련, 점검 및 필요한 조치
④ 재해예방에 필요한 안전, 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장비 구비와 유해, 위험요인 개선에 필요한 예산 편성 및 집행
⑤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충실한 업무수행 지원
⑥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등 전문인력 배치
⑦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 청취 및 개선방안 마련, 이행 여부 점검
⑧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등 조치 매뉴얼 마련 및 조치 여부 점검
⑨ 도급, 용역, 위탁 시 산재예방 조치 능력 및 기술에 관한 평가기준, 절차 및 관리비용, 업무수행기관 관련 기준 마련, 이행 여부 점검
나가는 말
개별 사회복지법인이나 수행기관(장) 입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매우 낯선 존재일 뿐 아니라 예산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어려움으로 인해 그 요구사항이 무척 과중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사회적 요구의 흐름과 관계 법령의 취지 등을 고려할 때 예외를 적용하여 동 법의 적용대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보다는 관계 법령의 준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정한 예산, 인력의 배정을 관계 부처에 요구하고 합리적인 수준에서의 안전, 보건관리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등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요구를 규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복지법인과 수행기관에 동 법령의 적용이 이루어지도록 효과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직접적인 관련 예산 편성뿐 아니라 안전보건 전문인력의 지원, 사회복지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안전보건 현장 매뉴얼의 제공, 시범모델의 도출과 우수사례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의 방식 등으로 수행기관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 쓸 필요가 있다.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하는 모법인의 의지도 중요하다. 말 그대로 법인(法人)으로서 그 스스로의 법인격에 따르는 법적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쉽지 않은 여건에서도 우리 사회의 어려운 곳을 묵묵하게 비추는 존재로서의 역할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것이나 그에 따르는 의무 또한 도외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운영의 어려움’이라는 이유로 노인복지 영역에서의 소중한 역할 하나를 놓아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수행기관은 먼저 안전보건 영역을 비롯하여 종사자 보호에 필요한 법적・사회적 요구사항을 명확히 이해하고 내재화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나 전문가 조직으로부터 제공되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서로 다른 여건에 놓여 있는 각 법인과 기관에 맞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상시근로자 수 산정에 따른 법적 책임(「근로기준법」, 「장애인고용법」, 「고령자고용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 등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명확히 하기 위해 모법인 및 동일법인 내 타 수행기관과의 관계를 좀 더 유기적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겠다. 아울러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기 위해 수행기관 스스로 독자적인 법인격을 구축하도록 촉진하거나 혹은 사회적협동조합 등 독자적인 법인격 주체를 노인일자리사업에 적극 참여시키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박윤섭
노무법인 의연 대표 공인노무사, 사회복지사
1)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산업재해 중 ①사망자가 1명 이상 ②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또는 ③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 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함
2) 「중대재해처벌법」 상 ‘사업주(자신의 사업을 영위하는 자, 타인의 노무를 제공받아 사업을 하는 자)’의 의무이행과 보호는 근로자 외 도급, 용역, 위탁관계 등도 포함하므로 ‘근로자’를 사용하여 사업을 행하는 자로 한정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사업주’보다는 넓은 범위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봄
3)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사업경영담당자등(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해당 사업에서의 직무, 권한과 책임, 의사결정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되, 형식상의 직위나 명칭에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에 관한 최종적 의사결정권한을 갖는 사람은 경영책임자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봄
4) 근로복지공단에 신고된 시니어클럽의 사회보험(산재) 업종 분류는 대부분 노인복지적 성격에 따라 사회복지사업[90714]으로 되어 있지만, 최초 사업장 성립 신고시 사업서비스업[90104] 또는 경영컨설팅서비스업[90707]으로 신고되어 있는 경우도 발견됨
5) 사회복지사업 외 운수부대서비스업[50005], 교육서비스업[90715], 도소매업[91001], 음식및숙박업[91002], 제조업[21002], 택배업[50110] 등 다양한 업종으로 신고되어 있어 기관의 주된 업종 결정에 영향을 끼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