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실버인력뱅크는 4호선·수인분당선 정왕역에서 도보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건물 3층과 4층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처음 3층으로 올라가자 다시 4층 사무실로 안내받았다. 각 층 공간 곳곳에는 상담이나 교육, 사업 운영을 위해 방문한 참여자들이 오가고 있었고, 작은 규모의 공간 안에서도 현장의 분주함이 느껴졌다. 이곳에서 약 1,800명의 노인일자리 참여자와 270여 개 수요처가 연결되고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공간의 크기보다 훨씬 큰 현장의 밀도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2000년 노인자원봉사센터로 출발한 이 기관은 2006년 ‘실버인력뱅크’로 명칭을 전환하며 노인일자리사업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실버인력뱅크는 경기도에서 발전해온 노인일자리 수행기관 모델로, 노인자원봉사와 사회참여 기능을 기반으로 운영되어 온 특징이 있다. 한때 경기도 전역에서 운영되던 실버인력뱅크는 시니어클럽과의 통합 등을 거치며 현재는 11개 기관만 운영되고 있다.
시흥실버인력뱅크는 그 가운데 하나로 지역사회형 노인일자리 모델을 꾸준히 확장해 오고 있다. 인터뷰는 기관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송은정 부장과 함께 진행되었다.
송은정 부장은 시흥실버인력뱅크의 핵심 철학을 설명하며 “노인일자리를 단순한 소득 지원으로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어르신들이 가진 경험과 역량을 지역사회와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역할과 보람을 느끼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관의 슬로건 역시 “활기찬 노년의 미래를 디자인하다”다.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삶과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곳은 참여자를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지역사회 자산으로 바라본다. 송 부장은 “참여자 한 분 한 분의 역량을 파악해 지역사회 수요와 연결하는 것이 인력뱅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참여자 상담도 단순 접수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지를 세심하게 듣는다.
시흥시는 오랫동안 ‘젊은 도시’로 불려왔다. 신도시 개발과 인구 유입이 활발했고, 최근까지도 노인인구 비율이 10% 미만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젊은 세대와 함께 고령층 유입도 늘어나면서 돌봄과 생활 지원 수요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송은정 부장은 노인일자리 역시 지역 특성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지역에서 성공한 사업이라고 해서 우리 지역에서도 그대로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지역의 산업 구조, 인구 특성, 참여자들의 학력과 경험 수준까지 다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흥실버인력뱅크는 돌봄과 지역사회 지원 중심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왔다. 현재 운영 중인 대표 사업 가운데 하나는 지역아동센터 및 초등학교 돌봄교실 지원사업이다.
처음에는 학교 현장에서 큰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맞벌이 가정 증가와 늘봄학교 확대 흐름 속에서 수요가 빠르게 늘어났다. 지금은 오히려 학교 쪽에서 먼저 요청이 들어올 정도다. 특히 교사 출신이나 어린이집 근무 경험자 등 전문성을 가진 참여자들이 많아 현장 만족도도 높다고 한다. 현장에서는 “핵가족화 속에서 아이들이 할머니·할아버지 같은 정서를 경험한다”는 반응도 나온다고 했다.
송은정 부장은 시흥실버인력뱅크의 핵심 철학을 설명하며
“노인일자리를 단순한 소득 지원으로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어르신들이 가진 경험과 역량을 지역사회와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역할과
보람을 느끼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송은정 부장은 최근 노인일자리 참여자들의 변화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소득 보전을 위한 참여가 많았다면, 이제는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하려는 욕구가 훨씬 강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생계 보완 목적의 참여도 중요하지만, 최근에는 사회 기여나 자기 역할을 찾기 위해 참여하는 어르신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기관에는 전직 공무원, 기술자, 사업가 출신 참여자들도 적지 않다. 한 참여자는 응급안전안심지킴이 사업에 참여한 뒤, 개선점과 정책 제안을 A4용지 세 장 분량으로 정리해 전달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기관이 사업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참여자님들이 먼저 이런 일자리를 해보고 싶다고 제안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참여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편의점 사업도 시작됐다. 과거 유통업이나 계산 업무 경험이 있는 어르신들이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제안했고, 고민 끝에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두 개 매장이 운영 중이다.
송은정 부장은 이런 변화를 보며 “노인일자리가 더 이상 단순 생계형 사업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사회 기여와 자기실현 욕구가 함께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 방식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매일 일정하게 일하기를 원하는 참여자가 있는가 하면, 일주일에 이틀 정도 집중적으로 활동하고 나머지 시간은 개인 활동이나 취미생활에 쓰고 싶어 하는 참여자도 늘고 있다고 했다.

시흥실버인력뱅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통합돌봄 영역과의 연계다. 기관은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응급안전안심서비스, 장애인 지원사업 등과 협력하며 노인일자리를 지역 돌봄체계 안으로 연결해 왔다.
예를 들어 응급안전안심지킴이 사업에서는 참여자들이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해 기기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사용법을 안내한다. 또 공공행정업무지원단 참여자들은 동주민센터와 협력해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하기도 한다.
송은정 부장은 이런 연계가 가능했던 이유로 지자체의 적극적인 역할을 꼽았다.
“수행기관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지자체 의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시흥시는 공공기관과 연결할 때 행정적으로 많이 지원해 줬고, 그 덕분에 사업이 훨씬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노인맞춤돌봄기관이나 응급안전안심서비스 수행기관 등과의 협력 역시 중요한 기반이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기존 돌봄기관들이 노인일자리 수행기관과의 협업을 낯설어하기도 했지만, 지속적으로 현장을 설명하고 협력 구조를 조율하면서 지금의 연계체계를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시흥실버인력뱅크는 규모가 큰 기관은 아니다. 실무 인력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환경 속에서 현장 중심 운영 역량은 더 단단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송은정 부장은 “우리 기관은 참여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일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전화만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참여자의 어려움과 수요를 계속 확인한다는 것이다.
소규모 수행기관의 현실적 어려움도 적지 않다. 제한된 운영비와 인력 속에서 사업 개발, 참여자 관리, 교육, 수요처 발굴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결국 현장인 만큼, 지역 특성에 맞는 사업 발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기관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보람’이다.
“학교 앞 교통안전을 하면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갈 수 있다는 보람을 느끼시고, 공원을 청소하면 시민들이 깨끗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를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기관은 참여자 교육 때마다 왜 이 일이 지역사회에 필요한지, 어떤 가치를 만드는지 반복해서 설명한다고 했다. 단순한 일자리 관리가 아니라 ‘사회참여의 의미’를 함께 전달하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송은정 부장은 초고령사회 속 노인일자리의 미래 역할에 대해 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돌봄 수요 증가 속에서, 결국 지역사회를 지탱할 중요한 인적 자원은 어르신들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AI와 자동화가 확대될수록 사람을 직접 돌보고, 공감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역할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일은 AI가 대체할 수 있겠지만, 사람을 돌보고 삶의 경험을 나누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합니다. 어르신들의 책임감과 공감 능력은 큰 강점이에요.”
그래서 앞으로의 노인일자리는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일자리는 수행기관 중심이 아니라 참여자 중심이어야 합니다. 어르신들이 정말 하고 싶고, 보람을 느끼는 일이 무엇인지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정왕역 인근 작은 공간 안에서도 수많은 참여자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현장의 밀도가 느껴졌다. 시흥실버인력뱅크는 그렇게 ‘일자리’라는 이름 안에 지역사회, 돌봄, 관계, 그리고 삶의 의미를 함께 담아가고 있었다.
최성원
인구포커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