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18호 현장이슈

다문화사회에 기여하는 노인일자리를 위하여!

이은옥 광주북구시니어클럽 사업팀장
#광주북구시니어클럽 #다문화가족 #유아언어발달
“바나나 주세요!”
4살의 보통 아이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인 한마디일 수 있지만, 유아 언어발달 촉진 지원사업에 참여한 아이에게는 그 자체로 감동적인 순간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 현규는 눈맞춤도 없고 표정, 표현도 없는 외마디 소리만 내던 아이였다. 힘드시면 다른 수혜 아동을 찾아보자는 권유에도 사업 참여 어르신은 아이가 너무 예쁘다고 말씀하였다. 시간이 지나 라포가 형성된 후, 떼쓰고 울던 아이가 참여자의 목을 휘감고 정서적 지지대를 삼아 장난감을 빼앗아 오는 모습으로 변했다. 눈맞춤도 잘되고 ‘정리하자’, ‘주세요’와 같은 간단한 지시어도 잘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업종료일 하루 전에 “바나나 주세요”라고 툭 내뱉었고, 그 순간 참여자 어르신은 박사님이 되어 있는 먼 미래의 현규를 꿈꾼다.
유아 언어발달 촉진 지원사업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와 더불어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24년 전국의 합계출산율은 0.75명(통계청, 국가통계포털)으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는 반면, 다문화가정의 출생아 비율은 2015년 이후 매해 증가하여 2020년 6%를 기록하였다(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문화가정 부모의 한국사회 적응과 자녀양육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초기에는 한국어 사용, 사회 적응, 경제적 어려움 등이 주된 문제지만, 자녀가 태어나면 양육과 교육문제가 더 큰 어려움으로 대두된다. 자녀들이 한국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여 학업에 지장이 있을 것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으며, 영유아기 한글 학습과 사회화의 주된 교육자인 엄마가 외국인인 경우가 많아 아동이 학령기에 접어들수록 학교 부적응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광주광역시 다문화인구는 2023년 말 기준 25,903명이다. 이 중 북구에 거주하는 다문화가구원은 7,167명으로 27.7%에 달한다.
여성가족부의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가족 자녀의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 취학률은 40.5%로, 전체 국민의 고등교육기관 취학률(71.5%)보다 31%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여성가족부, 2022). 부모의 한국어능력 부족으로 자녀의 언어발달이 지연되면 학습 부진, 자존감 저하, 사회부적응 등 사회문제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이에 유아기와 학령기 자녀들이 잘 적응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2024년 다문화가정 유아들의 언어발달을 돕기 위한 ‘시니어 다문화 언어발달 도우미’ 시범사업을 시작하였다.
현재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은 다문화가족 자녀의 언어발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주 2회(회당 40분) 언어치료 및 발달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수요가 많아 최대 2년까지 대기해야 하며, 서비스는 센터 방문자에게 우선 지원되고 출장 지원은 제한적(1개 시설, 2명 이상 신청)이다. 이로 인해 일부는 서비스를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각지대에 있는 유아들을 발굴하고 복지관이나 가족센터에 잘 연계해 주자는 취지였기에, 수혜자를 찾는 일이 쉬울 줄 알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지역아동센터에 수요조사를 했을 때 많은 기관이 신청의사를 보였으나, 대상을 유아로 좁히니 관심을 보인 곳은 2곳에 불과했다. 이후 어린이집협회를 통해 홍보를 시작하고 원하는 곳을 중심으로 주변을 공략하여 홍보한 결과 9곳의 수요처를 발굴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 원장님들은 이 사업이 필요하고 좋은 사업이라고 동의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걱정과 우려를 표하였다. 특히 일자리 참여자가 보육의 흐름을 끊지 않고, 수요처의 프로그램 속에서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어야 하고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또한, 코로나 마스크 세대 아이들의 언어발달이 지체된 상황에서 다문화가정만 지원 대상으로 제한하는 것은 역차별이 될 수 있으므로, 유아 전체로 지원 대상을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수요 조사 결과, 북구에는 생각보다 다문화가정 유아가 많지 않았고, 전남대학교 주변 어린이집은 오히려 외국인가정이 더 많았다. 결국, 당초 의도에서 조금 더 수혜자 범위를 확장하여 다문화와 외국인가정을 포함하였고, 14명의 수혜 아동을 6명의 일자리 참여자가 맡게 되었다.
다양한 유아들의 언어 발달: 문제 행동을 넘어선 성장
수혜 아동들의 상황은 아주 다양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현규 사례는 부모가 인정하지 않은 복합 장애(ADHD, 경계성 지능장애 등)를 가지고 있는 아동의 경우였다. 이 아동은 수업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참여 어르신이 밀착하여 교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었다. 처음에는 어린이집 교사의 구역을 침범하는 점령자 취급이 참여자에게 부담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풀렸고, 수혜 아동과의 라포형성 시간은 참여자의 성격과 인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아이에게 진심을 지속적으로 보여준 결과, 서너 달의 힘든 시간 끝에 결국 “바나나 주세요”라는 말로 보답받았다. 담임교사는 ‘선생님이 꼭 필요해요’라며 출근하지 않은 날을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또 다른 사례로, 지율이는 부산스럽고 가끔 쓰레기통을 엎고 입에 더러운 것을 넣는 행동을 해서 참여자를 당황하게 하였다. 원장님은 아이를 위해 연장반에서 단독 공간을 마련해 주었고, 참여자는 1:1 돌봄을 통해 언어발달을 촉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참여자가 문제 행동을 감당하기엔 벅찼고, 수혜 아동을 바꿔 달라는 면담을 요청하였다. 이 지점에서는 사업담당자의 세심한 노력이 필요했다. 참여자와 원장님에게 서로의 입장과 상황을 잘 설명하고 조율하여, 연장반 선생님과 함께 공동으로 돌봄 육아를 진행하며 사업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원장님은 지율이를 문제 아동이나 문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았고, 유아 발달 과정에서 아직 교육되지 않고 교정되지 않은 행동으로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관점은 참여자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고, 결국 원장님은 “다음에도 꼭 부탁드립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로 마무리했다.
1:1 집중 케어로 이룬 유아 언어 발달의 성과
유아의 언어발달을 지원할 수 있는 언어촉진 놀이법, 상호작용하는 방법, 유아 행동 이해 등 개발원에서 진행하는 현장 직무교육을 이수한 후 사업에 참여했지만, 한정된 시간에 유아 발달에 따른 이해와 교육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참여자들에게 유아 언어발달 촉진 지원사업은 힘들고 버거운 시간이었다. 기관에서는 동화구연, 교구 만들기, 영상교육 등의 자체적인 교육을 진행하였다. 본 사업은 교육뿐만 아니라, 유아의 언어적 소통능력 향상을 위한 사명감과 책임감, 수혜 아동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없으면 끝까지 마칠 수 없는 사업이다.
모친이 캄보디아 출신인 4살 유빈이는 창의적이고 집중력이 좋은 아이다. 사업 초기에는 알 수 없는 언어나 영어로 중얼거리기도 하고, 두 낱말 조합 정도의 문장을 표현하는 아이였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소극적이고, 또래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못하였다. 사업 기간 동안 참여자는 1시간 이상 아이를 1:1로 집중 케어하며 동화책을 읽어 주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블럭놀이 등을 통해 상호작용하며 언어발달 향상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유빈이는 다섯 단어 조합의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놀이 상황을 문장으로 표현하며 말이 많아졌다.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자 혼자 노는 시간은 줄고, 어울려 놀이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유빈이 엄마는 아이에 대한 걱정을 덜었고, 사업에 대한 고마움을 연신 표현하였다.
1:1 수업은 아이가 집중력이 부족하고, 참여자의 교안 구성과 진행 능력이 부족하다면 매우 힘들 수 있다. 1:1 수업을 하는 아이들에 대해 광주북구가족센터에서 언어발달 지도사가 수혜 아동의 발달수준 검사를 지원해 주었다. 그 결과는 짧은 시간이라도 1:1 수업은 아이들의 언어발달에 꼭 필요한 부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유아의 발달 여정: 언어와 정서의 성장
다은이는 22개월로, 엄마는 베트남 출신이고, 아빠는 언어장애를 포함한 장애가 있는 다문화가정의 유아다. 유미의 언니는 발달장애 판정을 받고 결국엔 특수 어린이집으로 옮겨졌기에, 다은이 언니는 어린이집 원장님에게 가슴 아픈 손가락과 같은 존재였다. 원장님은 언어발달 촉진 지원사업을 적극 지지하며 신청하셨고, “이런 사업이 일찍이 있었더라면 유미 언니가 지금보다는 더 좋아졌을 것”이라며 아쉬워하셨다. 처음 다은이는 눈맞춤 없이 지극히 단순한 반응만 보였고, 가끔 외마디 소리를 내던 아이였지만, 11월이 되자 의사표현이 분명해지고 자주 웃으며 인사도 잘하는 아이로 변했다. 언어적 발성은 약했지만, 또래들과의 관계도 적극적이었고 교사의 지시도 잘 따르는 긍정적인 변화와 발달을 보였으며 정서적으로도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가정환경이 안 되고, 아이가 어려서 힘들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때야말로 할머니의 수다스러움을 발휘하여 밥 먹을 때, 손 씻을 때, 까꿍 놀이할 때 한국어를 남발하여 언어발달을 도울 수 있는 절호의 환경이었다.
2024년 시범사업의 효과를 목도한 원장님들이 입소문을 내어주고, 어린이집협회를 통해 열심히 홍보한 결과, 2025년도에는 41곳에서 자발적으로 신청서를 냈다. 또한, 일자리 참여자 신청은 80건에 달하며, 사업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유아 언어발달 촉진 지원사업’ 발전을 위한 제언
시니어 다문화 언어발달 지원사업은 이제 세상을 만난 아이와 60년 이상 세상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이 만나 세상과 소통하는 언어를 통해 꽃을 피우는 귀한 사업이다. 다문화가족 자녀의 언어발달 지원을 노인일자리와 연계하여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고, 저출산 고령화사회에 대응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사업의 목적은 분명해졌다. 또한, 사업 홍보영상도 제작을 완료했으며, 올해는 유아 언어발달 촉진 지원사업의 안정화와 내실화를 기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 담당자가 현장에서 진행하며 느꼈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참여자는 교육이 아닌 보육의 관점에서 수혜 아동을 인내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참여자 선발 시 성격, 인성, 건강 상태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보육 차원에서 좌식활동이 가능한 건강한 사람을 선발해야 한다. 둘째, 참여자에게 유아의 시기에 맞는 발달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필요한 교육과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사업의 전국 확대를 위해 개발원에서 매뉴얼을 제공했지만, 이를 더 쉽게 접근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개발하여 제공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육 교사들이 사용하는 용어 차이를 고려한 교육도 필요하다. 셋째, 참여자는 어려움을 겪겠지만, 어린 영유아일수록 이 사업이 효과적이고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수다스럽고 친절한 할머니가 필요하다. 넷째, 다문화 및 외국인가정은 전출입이 잦은 경우가 많으므로, 수요처와 수혜자를 선정할 때 주의해야 한다.
2025년도에도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사업이 더욱 질적으로 향상되고, 정착되어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이다!
“영유아와 몸으로 놀고 놀이로 말하면서, 나의 남은 여생의 목표인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 행복하다.”
“내 것이 중요하고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그들의 것도 옳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극복하고 적응하고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직 무엇이 되기 이전의 흰 도화지 상태의 아가들에게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고, 사람이란! 타인이란! 어른이란! 이런 존재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광주북구시니어클럽 ’24년도 참여자 소감
※ 본고에서 유아 이름은 가명으로 명기하였음.
참고문헌
• 최윤정, 전기택, 김이선, 선보영, 동제연, 양계민, 최영미, 황정미(2022). 「2021년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 여성가족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 행정안전부(2023). 「지방자치단체외국인주민현황」, 읍면동별 다문화가구 현황.
• 통계청(2020, 2024). 「인구동향조사」. KOSIS 국가통계포털.(http://kosis.kr)
이은옥
광주북구시니어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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