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15호 동향

지역사회 돌봄공동체로써 노인일자리 정책 방향과 과제

최혜지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지역사회 #돌봄공동체
들어가며
최근 노인일자리사업의 목적과 성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두 개의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은 한가지로 모아졌다. 누구의 누구들로 연결된 세상에서 이름을 잃지 않고 모두를 위해 누구의 누구로서 역할을 다하는 존엄한 일상이 노년의 오늘로 현실화되는 것, 이것이 노인일자리사업의 목적이며 성과이다. 이는 노인일자리사업의 시선은 참여 노인이라는 개별 주체뿐 아니라 누구의 누구로 구성된 지역사회를 향해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글은 노인일자리사업이 존엄한 노년의 토대인 좋은 돌봄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지역사회 돌봄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노인일자리 속의 돌봄과 돌봄공동체 형성의 방향성
돌봄 분야의 대표적 노인일자리사업은 노노케어이다. 노인 참여자가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취약 노인에게 일상생활 및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는 노노케어는 2005년 복지형 사업이 전략사업으로 추가되면서 부각되었다. 노노케어를 포함한 복지형 일자리 비율은 2007년 기존의 10%에서 25%로 확대되었고 노노케어는 2010년 집중전략사업으로 선정되었다. 2013년에는 연중일자리사업으로 선정되어 참여기간이 12개월로 증가했다. 사회서비스형 일자리 중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함께하는 LH생활돌봄서비스사업이 좋은 예이다. 이 사업은 돌봄서비스가 필요하고 또 서비스 이용을 희망하지만 실질적으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었던 3,981명의 돌봄 사각지대 노인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 돌봄이 탈산업사회의 핵심 위험으로 주목되면서 지역마다 노인일자리 외에도 다양한 돌봄 관련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019년부터 시범사업이 진행 중인 지역사회통합돌봄은 지역사회 돌봄공동체의 구축과 활용에 집중한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기초지자체는 민과 관의 전문가로 구성된 통합지원회의(케어회의), 지역돌봄협의체 등 지역사회 돌봄공동체의 구성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인일자리는 지역사회통합돌봄과 같이 지역 내에 형성 중인 돌봄 생태계와의 융합을 통해 돌봄공동체로의 발전을 구상해야 한다. 노인일자리만으로 완결적 구조를 갖는 지역사회 돌봄공동체를 형성하고 지속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노인일자리 중심의 배타적 지역사회 돌봄공동체는 자칫 구조적으로 고립되거나 파편화되기 쉽고, 기능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지역사회의 돌봄 생태계 내에서 노인일자리의 고유한 위치와 차별적 기능을 확보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른 돌봄 주체와 연계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 노인일자리는 지역사회 내에서 통합적이고 기능적인 돌봄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역사회 돌봄공동체의 조건
같은 관심과 목적 또는 같은 환경을 공유하는 집단을 의미하는 ‘공동체’는 라틴어의 communitas를 어원으로 한다. 같음을 뜻하는 communitas는 ‘모두에게 공유되는’이라는 의미를 지닌 communis로부터 파생되었다. communis는 con과 munis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접두사 con은 ‘함께’를 munis는 ‘서로 봉사한다 또는 관계한다’를 뜻한다(위키백과, 2024.5.15. 내려받음). 어원에 충실할 경우 공동체, community는 서로 봉사하고 관계 맺기를 함께하는 집단으로 정의될 수 있다. 즉 공동체는 언어의 탄생에서부터 서로 봉사하고 관계 맺음이란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서로 관계를 맺거나 봉사하는 모든 집단이 공동체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는 스스로를 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지닌 개인을 필요로 하며, 집단 성원은 집단의 목적과 경험을 공유하고, 상호 이익을 교환하는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며, 경험과 관계가 순환하며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 즉 어떤 집단이 공동체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성원 간의 호혜성, 순환성, 확장성의 특성을 충족해야 한다.
한편 돌봄공동체는 돌봄을 봉사와 관계 맺음의 이유이자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다. 특히 돌봄공동체의 구성단위와 활동의 범위가 지역사회에 기반하는 경우 지역사회 돌봄공동체로 명명될 수 있다. 노인일자리사업은 지역이라는 공간적 경계를 갖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지역사회에 토대를 둔다. 따라서 지역사회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친밀감을 지닌 노인일자리 참여자가 돌봄이라는 목적과 사건을 공유하고, 돌봄이 만드는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를 형성하며, 돌봄을 주고 받는 경험과 관계가 순환적이고 또 확장될 수 있을 때 노인일자리는 지역사회 돌봄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 이는 노인일자리가 지역사회 돌봄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서 호혜성, 순환성, 확장성을 확보하고 증진하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노인(돌봄)일자리의 호혜성
먼저 호혜성을 높이는 방안부터 고민해 보자. 현행의 노인일자리사업처럼 일자리 참여 노인이 돌봄 이용 노인에게 일방향적으로 돌봄을 제공하는 관계는 호혜성과는 거리가 있다. 호혜성은 행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조건으로 하며 특히 상호작용이 서로에게 긍정적 경험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현재의 노인일자리사업에서는 수당, 급여 등 경제적 이익이 참여 노인에게 보상으로 주어진다. 주요 보상이 경제적 이익이고 보상의 출처가 정부나 기업이기 때문에 참여 노인이 이용 노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긍정적 경험, 즉 호혜성은 모호하다. 노인장기요양의 경우 서비스 제공 기관은 서비스를 이용할 노인을 자력으로 발굴해야 하고, 돌봄 노동자는 서비스를 제공할 노인을 배정받는 것이 소득과 직결되기 때문에 서비스 이용자의 확보 자체가 경제적 보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반면 노인일자리는 참여 노인과 이용 노인을 수행기관이 매칭해 주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자리 참여 노인에게 돌봄 이용 노인 자체는 경제적 이익이라는 보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수당 또는 급여라는 보상의 출처가 정부나 기업이고 무엇보다 수당이나 급여를 받을 기회가 수행기관의 담당자에게 달려있음을 잘 아는 참여 노인에게 돌봄 이용 노인은 보상과 무관한 존재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노인일자리의 특성상 참여 노인과 돌봄 이용 노인의 호혜적 관계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돌봄 이용 노인은 이용료나 분담금 등 별도의 지출 없이 일상에 필요한 지원을 받고 또 말벗을 얻는다. 돌봄 이용 노인은 자신이 누리는 돌봄이 참여 노인의 행위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참여 노인과의 돌봄 관계를 본질적으로 유익한 것으로 인식한다. 참여 노인 또한 첫 대면부터 돌봄 이용 노인과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상호작용의 주체가 되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정서적 충족감 등을 경험한다. 돌봄 이용 노인이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감사, 돌봄 이용 노인의 일상적 불편함이나 정서적 외로움을 덜어내는 데 자신이 기여한다는 뿌듯함,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자긍심, 노년의 삶을 공유하고 서로의 안부를 살피는 상대가 있다는 위안 등 참여 노인 또한 돌봄 이용 노인과의 관계를 통해 심리·정서적 보상을 얻는다. 그런데 수당이나 급여 등 경제적 이익와 달리 돌봄 관계에서 발생하는 심리·정서적 보상은 참여 노인 개인의 심리적 성향에 따라 민감하게 인지할 수도 있고 혹은 보상으로 포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즉 누군가를 돌보는 자신의 행위가 타인이나 지역사회에 갖는 의미, 돌봄 이용 노인과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심리·정서적 보상에 대한 발견과 해석은 노인의 심리적 성향에 따라 축소되거나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노인일자리를 통한 돌봄 관계가 공동체의 주요 요소인 호혜적 속성을 장착하기 위해서는 참여 노인이 자신의 돌봄 행위가 지역사회, 돌봄 이용 노인의 삶에 갖는 의미를 찾고, 해석하고, 감상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적 과정이 노인일자리사업의 일부로 구조화되어야 한다.
노인(돌봄)일자리의 순환성
순환성이란 돌봄의 관계가 시작과 끝이라는 직선적 과정이 아닌 끝이 곧 또 다른 시작으로 연결되며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속성을 말한다. 노인 돌봄에서 돌봄 제공자와 돌봄 이용 노인의 관계는 사업 기간의 만료로 종결되는 직선적 관계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시간의 범위를 확대해 돌봄 관계를 조망하게 되면 돌봄 제공자로 돌봄 관계에 진입했던 개인이 건강과 기능의 변화에 따라 돌봄 이용 노인으로 새로운 돌봄 관계를 시작하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순환성을 갖는다. 노인일자리를 통해 지역사회 돌봄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은 노인일자리에서의 돌봄 또한 이와 같은 순환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현행 노인일자리에서 노인 개인은 필요한 일자리에 배정되어 노동력을 공급하는 참여자로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노인에 대한 관리는 잠재적 참여자에게 집중된다. 노인일자리의 참여자로서 역할이 종결되면 노인은 관리의 대상에서 배제되고 노인일자리와의 연결은 지속되기 어렵다. 즉 노인일자리에서 노인 개인이 활용되고 소비되는 방식은 지극히 직선적이다. 그런데 노인일자리에서 주요한 발굴 대상 중 하나는 서비스가 필요한 이용자이다. 노인일자리 담당 인력의 업무 총량 중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노인일자리를 통해 창출되는 서비스를 이용할 대상을 찾고 특정하는데 집중된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에 요구되는 순환성은 돌봄과 관련된 노인일자리의 운영 방식에 의미 있는 함의를 제공한다. 즉 돌봄 제공자로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 역시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잠재적 이용 노인이라는 점이다.
지역사회 돌봄공동체라는 관점에서 노인일자리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현재의 노인일자리가 갖는 직선적이고 휘발적인 돌봄 관계를 순환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업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노인일자리 참여자로서 소임을 다하고 돌봄 관계에서 사라지는 참여 노인을 노인일자리의 미래 수요자로 관리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후속적 경로가 만들어져야 한다. 흔히 돌봄 관계에서 역량이란 돌봄을 제공하는 인력에게 요구되는 특정 능력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좋은 돌봄은 돌봄 제공자와 이용자 상호 간에 서로 존중하고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노인은 타인에게 자신의 돌봄 욕구를 알리고, 외부의 돌봄 자원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며, 외부에 돌봄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을 돌보는 타인을 존중하고 적절한 언어와 행동으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는 미래에 돌봄을 이용할 노인이 좋은 돌봄에 필요한 능력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노인일자리 체계의 일부로 구조화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사업 기간의 종료 후에도 교육, 나들이 등 다양한 활동을 매개로 하여 돌봄 제공자로 노인일자리에 참여한 노인을 미래의 돌봄 이용 노인으로 관리하고, 좋은 돌봄을 위한 노인의 역량을 높이는 과정을 통해 돌봄 관계의 순환성을 창조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수 있다.
노인(돌봄)일자리의 확장성
노인일자리를 통한 돌봄 관계가 지역사회 돌봄공동체로 진화할 수 있는가는 돌봄 관계의 확장성에 달려있다. 먼저 돌봄과 관련된 노인일자리가 양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노인일자리를 통해 신생되는 돌봄 관계가 양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을 차지할 수 있을 때 지역사회 돌봄공동체 내에서 노인일자리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노인의 수,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노인일자리를 통해 공급되어야 할 돌봄의 적정 규모를 가늠하고 매년 적정 규모 이상의 돌봄 관련 노인일자리를 확보하는 양적 확장이 지역사회 돌봄공동체를 촉진하는 주요 전략일 수 있다.
다음은 관계의 확장이다. 노인일자리를 통해 긍정적 경험을 하는 호혜적 관계의 범위가 돌봄을 주고받는 일차 당사자로 축소되지 않고 다른 체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참여 노인의 가족은 노인의 경제적 부양에 대한 부담을 덜고 특히 부모가 활기찬 일상을 영위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통해 부모에 대한 염려와 불안에서 벗어난다. 돌봄 이용 노인의 가족은 부모의 돌봄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완화하고 지역사회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노인일자리로 인해 긍정적 경험을 하는 이와 같이 다양한 체계가 지역사회 돌봄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포섭될 수 있어야 한다.
노인일자리 등 공공에 의한 돌봄의 확대는 가족에게 집중되었던 돌봄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누는 공조 체제를 만든다. 이와 같은 돌봄의 사회화는 간혹 돌봄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인식되어 돌봄 책임은 이제 사회에 주어지고 가족은 돌봄으로 자유로워졌다는 오해를 낳는다. 그러나 사회적 돌봄과 가족의 돌봄은 상보적인 것으로 가족은 여전히 취약한 가족원에 대한 돌봄의 책임을 갖는다. 이는 지역사회 돌봄공동체가 공공과 민간, 돌봄기관과 노동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돌봄 이용 노인 당사자를 포함하는 확장적 체계임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노인일자리는 참여 노인, 돌봄 이용 노인, 가족 그리고 주변 체계를 돌봄 관계의 활동적 구성 인자로 포함하여 지역사회 돌봄공동체의 경계를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맺으며
돌봄은 관계를 매개로 전달되는 관계재이다. 관계재의 질은 행위자 사이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참여 노인과 돌봄 이용 노인의 좋은 관계를 통해서만 질적인 돌봄이 가능하다는 가정이 성립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좋은 관계는 상대를 신뢰할 수 있을 때 형성되고 사람 사이의 신뢰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현 노인일자리사업의 구조는 참여 노인과 돌봄 이용 노인이 관계 맺는 기간을 충분히 또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노인일자리가 지역사회 돌봄공동체라는 아름다운 구성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관계재, 즉 시간을 통해서 견고해지는 돌봄의 특성을 노인일자리에 담아내는 정책적 민감성이 필요하다.
최혜지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고문헌
• 위키백과, 2024.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A%B3%B5%EB%8F%99%EC%B2%B4&action=edit§ion=1 5월 15일 내려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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