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제정 취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라는 법률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법률은 환자, 그중에서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일부 사람은 존엄사법 또는 웰다잉법이라고도 부르지만 「연명의료결정법」에는 의사 조력 자살 등 소위 존엄사라고 불리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 않아 존엄사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치 않다(엄주희・김명희, 2018). 이 법률은 단지 임종기 환자로 판단 받은 자의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절차와 그 내용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의료 영역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의사로부터 자신의 상병 상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고, 그 정보를 기초로 해 의사의 침습 행위를 승낙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에 국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이석배, 2017). 「연명의료결정법」의 제정 취지는 죽음과 관련하여서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죽음을 포함하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나 다 적용되고 합법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자기결정은 결정의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제공받은 정보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이해했으며, 결정의 과정에 타인 또는 제3자로부터 강압을 받지 않고 행사되었을 경우에 한하여 존중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환자 본인의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알 수 없을 때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앞에 두고 환자 가족에 의한 환자의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추정하거나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를 통하여 결정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주요 내용
1) 대상 환자
연명의료결정을 할 수 있는 대상 환자가 누구인가는 「연명의료결정법」의 핵심 사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연명의료결정을 할 수 있는 대상 환자를 임종 과정에 접어든 환자로 보는데 임종 과정이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해 사망이 임박한 상태로 정의된다(연명의료결정법 제2조). 또한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한 명이 의학적 판단을 근거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동일한 진단을 내려야 연명의료결정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한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했거나 같은 법률에 따라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의사를 자율적으로 했다고 해서 그것을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우선돼야 하는 것은 환자의 상태가 임종 과정에 있는가에 대한 의학적, 즉 의료진의 판단이다.
2) 결정이 가능한 연명의료
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의 네 가지로 한정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연명의료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항암제와 복잡하지 않은 치료는 중단할 수 있지만 특수 연명 장치들은 중단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의료진은 실제 연명의료결정 대상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애로 사항을 호소했다. 이에 2018년 3월 27일 개정을 통해 결정할 수 있는 연명의료의 종류를 확대하고 환자의 상태에 따른 의료적인 판단에 의해 대상 연명의료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된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연명 의료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 생명 유지술(ECLS), 수혈, 혈압 상승제 투여, 그 밖에 담당 의사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시술로 확대됐다(연명의료결정법 시행령 제2조).
3)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의사 확인
(1) 연명의료계획서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 환자 또는 임종기 환자가 담당 의사와 협의 후 본인의 뜻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 등을 결정하고 호스피스에 관한 사항을 계획한 것을 담당 의사가 문서로 작성하는 서류를 말한다(연명의료결정법 제2조). 연명의료결정은 상당한 의학적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작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미국은 담당 의사가 환자의 상태와 연명의료에 관해 설명한 후 환자의 의사를 일정한 형식의 문서에 기록하는 제도를 도입했다(Physician's Order for Life Sustaining Treatment).
담당 의사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때 해당 환자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용어로 충분히 설명해 환자가 자신의 임종기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을 신중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된 연명의료계획서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명시적인 의사로 간주한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된 연명의료계획서는 연명의료결정이 필요한 시점에 조회하고 확인할 수 있다.
(2)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인 사람이 자신의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으로 제도화되기 이전인 1990년대 말부터 시민운동 차원에서 작성되기 시작하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은 보건소 등과 같이 지역보건 의료 기관, 의료법에 따른 의료 기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법인 또는 비영리단체, 공공기관이 자발적인 신청을 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정받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작성자가 임종기 환자가 돼 연명의료결정이 가능한 시기가 되면 담당 의사가 작성 여부 및 작성 내용 등에 대한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고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환자의 명시적인 의사를 판단한다. 또한 환자가 의식이 없거나 의사소통 능력이 없어 작성 여부 및 작성 내용에 대한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담당 의사 및 전문의 한 명의 판단에 따라 본인의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의사를 파악한다.
(3)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의사 확인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으나 환자의 의식이 명료한 경우에는 환자의 자율적인 의사를 근거로 연명의료를 결정하여야 한다. 환자의 의사 확인은 담당 의사가 환자와 함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거나, 이미 작성하여 등록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확인되는 경우 환자에게 확인하여 결정이 가능하다. 환자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거나 의식이 없는 경우에는 담당 의사와 전문의 1인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확인해 환자 생전의 의사를 확인한다.
(4) 가족에 의한 연명의료결정
임종기 환자나 의식이 없거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데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 법에 정한 범위 내의 가족 2인이 환자의 평소 연명의료 결정에 대해 진술함으로써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 연명의료결정을 할 수 있다. 이 가족 2인의 진술에 대한 진정성은 담당 의사 및 전문의 1인이 동일하게 판단한 경우에 한해 인정된다(연명의료결정법 제18조). 환자가 의사소통할 수 없거나 의식이 없으나 연명의료계획서 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작성되어 있지 않고 가족이 평소 환자의 연명의료에 대한 생각을 알지 못하는 경우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정한 범위의 환자 가족 전원의 동의로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한계와 과제
1)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기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담당 의사로부터 먼저 말기 또는 임종기 환자로 진단받아야 한다. 환자의 상태는 임종기가 되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기력이 쇠진하여 판단력 또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연명의료계획서의 작성은 질병의 초기 단계에서 의료진과 환자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작성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본래의 입법 취지인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본인의 임종기에 대한 의사 표현의 시기는 질병의 의학적 상태보다 환자 본인의 상태에 대한 자각 능력이 중심이 돼야 할 것이다. 좀 더 심사숙고해 자신의 임종기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의사가 말기 또는 임종기라고 판단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것보다 의사가 환자에게 질병의 상태, 예후 등과 관련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가 중심이 되어 논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연명의료계획서의 작성 시기를 말기 환자 등으로 판정받은 특정 시점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의 자율적인 결정으로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연명의료결정에서 무연고자의 차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병원윤리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연명 의료 결정을 하도록 권고했으나 법률 제정 과정에서 관련 조항이 삭제됐다. 가족이 없는 경우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가족의 진술로 환자의 평소 의사를 추정하여 결정하는 것이나 가족 전원이 합의로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환자 자신이 연명 의료 계획서를 쓰거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지 않는 경우에는 연명의료결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1인 가구가 늘어가고 비혼의 보편화 등으로 가족이 관계가 변해가는 현실에서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의 결정에 대한 적절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김보배, 김명희, 2018a).
3) 법률적 가족 이외 대리인 지정 제도 필요
「연명의료결정법」은 법률상 가족에 한정해 대리 결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두고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법률상의 가족에 한정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 법률로는 가족의 범위에 있으나 실제는 왕래하지 않거나 별거 중이거나 한 경우도 다반사이다. 또한 가족이기 때문에 상속 등의 문제로 상반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법률적인 가족이 아니어도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두고 결정이 가능한 자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위하여 결정이 가능하도록 평소 환자가 자신을 대신해서 결정을 해주기를 원하는 사람을 지정해서 결정이 가능하도록 법적으로 대리인을 지정해 둘 수 있도록 법을 보완해야 한다(김보배, 김명희, 2018b).
4)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 의무화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연명의료결정을 하려는 의료기관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의료기관이 선택하여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연명의료결정법」을 기관 내에서 실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료기관에 따라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한 연명의료결정이 가능할 수도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비록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사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었더라도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되지 않은 의료기관에서는 그것을 근거로 연명의료를 결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연명의료를 결정하려면 반드시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한 의료기관으로 가야 한다.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일관성이 없는 현실은 국민들에게 불편함과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연명의료를 실시하는 의료기관에는 모두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해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수용성이 의료기관 모두에서 같은 절차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맺으며
보라매 사건 이후 20여 년 동안의 혼란의 시기를 거쳐 2016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다. 2018년 2월 4일 전면 시행이 되면 연명의료 결정을 둘러싼 의료진과 환자, 환자의 가족들 간의 갈등이 해결되겠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죽음을 둘러싼 우리네 환경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죽음은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지난한 과정이다. 삶과 그 궤적을 같이 한다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과도한 의료 개입으로 인한 고통을 아주 조금 줄여 줄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연명의료결정제도만으로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을 존중받으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다. 좋은 죽음을 만드는 것은 삶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개인의 노력과 죽음을 둘러싼 사회와 가족 내 문화, 그리고 임종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가 어떤 돌봄을 제공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진정한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사람이 임종기에 적절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 경제적인 여건이 마련되어 누구도 경제적인 사유로 연명의료결정을 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이 죽어가는 환자도 자신들이 돌보아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하며 환자의 가족이 아니라 환자와 소통하며 의사결정을 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임종기 환자가 연명의료로 인한 고통 속에서 생을 마치도록 죽음을 의료화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환경과 돌봄 속에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복지라는 인식을 하고 정책을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제정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 매우 보수적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가족 중심의 우리 문화를 반영하여 가족에 의한 환자의 의사 추정 또한 대리 결정이 가능하여지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과 문화는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과 문화에 맞추어 「연명의료결정법」도 변화하여야 할 것이다.
김명희
국가생명정책연구원 원장
참고문헌
• 김보배・김명희(2018a). 무연고자의 연명의료결정: 제도적 관점에서. 한국의료윤리학회지, 21(2).
• 김보배・김명희(2018b). 연명의료결정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리인 지정제도 도입방안 모색. 한국의료윤리학회지, 2(2).
• 엄주희・김명희(2018).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의사조력자살 간 경계에 관한 규범적 고찰. 법학연구, 78, 1-32.
• 이석배(2017). 소위 ‘연명의료결정법’의 주요내용과 현실 적용에서 쟁점과 과제. 법학논총, 29(23), 311-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