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제기:웰다잉 정책과 자기결정 기반한 노인정책 기조
생로병사의 생명 순환과정 속에서 단계마다 필요한 사회적 지지를 마련하여 보다 인간답고 풍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역사 이래 모든 국가 및 정부의 핵심과제다. 때문에 국가의 사회정책은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지원을 넘어 더욱 보편화하여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보장하겠다는 정부 중심 복지국가 패러다임으로 발전하고 있다. 노인복지조차 생로병사에 이르는 생명 순환을 거스를 수 없다. 따라서 진정한 노인복지는 노년의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복지가 아닐까? 이러한 점은 특히 생애 말기에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생애 말기에 삶을 의미 없이 연장하는 것보다 인간답게, 즉 “가치”있게 “의미”있게 “존엄”하게 마무리하는 것, 즉 웰다잉(善終)이 진정한 웰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향은 이미 시민사회의 주도로 법적으로 명시되었다. 2009년 대법원은 김 할머니 사건에 대한 판결을 통해, 날로 심화되는 의료환경에서 생애 말기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강행하는 생명 연장이 아니라 중단 혹은 유보하는 자기결정이 오히려 헌법에서 보장된 온 국민의 행복추구권에 부합한다고 천명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결은 생애 말기(임종기)에 한정하였지만,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의료법적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 결과 2016년 2월 공표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은 생애 말기에서뿐만 아니라 그 이전 즉 건강할 때도 자신의 가치 규범과 종교에 따른 자기 결정권 행사의 필요성을 법제화하였고 이는 자기 결정권에 기초한 웰다잉 정책의 초석을 마련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1) .
이러한 법적 기초는 시민사회의 의식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점도 의미 있다. 의료계에서는 아직도 의심하는 문화가 많지만 대부분 65세 이상 노년들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상황에 대해 알고 싶어 하며 스스로 혹은 가족들과 함께 자기결정을 하고 싶어 한다. 이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2) . 이러한 시민사회의 변화로 인하여 제도가 본격 시행되어 5년도 되지 않은 2023년 1월 사전 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160만 명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괄목할 만한 성과는 연명의료법 관련 국회의 입법 활동 및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그 출구를 만들어 주었지만,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참여와 자원봉사활동 등 시민단체의 활동 없이는 달성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기결정에 기초한 웰다잉 정책은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와 시민단체 활동을 기반으로 정부의 법제도 개선 및 지원이 힘을 더해주는 협업적 거버넌스를 내포한다. 이러한 취지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과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 등 정부정책에 단편적으로 반영되었을 뿐, 내용에 있어서 체계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생애말기 자기결정권 보장 및 문화 확산이라는 취지를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2022년 조출산율 0.78을 기록하는 등 극심한 저출산과 더불어 2025년으로 성큼 다가온 초고령사회의 파고에 사회의 근간이 위협받고 있다.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웰다잉 정책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정부 협업적 노인 정책적 대전환은 지속 가능한 초고령사회를 위하여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자기결정에 기초한 웰다잉 정책의 필요성
자기결정에 기초한 웰다잉 정책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변화 속에서 시민사회와 함께 정부 정책으로서 그 필요성이 강화되고 있다. 같은 정책도 사회변화에 따라 그 효과를 달리한다. 특히나 사회변화가 복합적이고 중첩적으로 이뤄질 때 효과 있는 정책 추진은 그만큼 어려워진다. 자기결정에 기초한 웰다잉 정책은 (1) 의료기술 및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 (2) 가족해체를 비롯한 근대사회의 해체와 후기근대적 성찰(혁신) 문화의 증가, (3) 초고령사회의 도래와 초고령층의 급증이라는 복합적, 중첩적 변화에 상응하여 그 필요성이 급증한다.
(1) 의료기술 및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다양한 연명 의료기술의 발전을 가져오기 때문에 자기결정에 기초한 웰다잉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고령층을 포함한 전 국민이 대부분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리고 있어 생애 마지막을 의료적 혜택을 누리며 의료시설에서 보내고 있는 비율이 높다.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이 2021년 74.8%에 이를 정도로 의료기관의 사망률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기술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더욱더 새로운 연명의료기술을 낳고 있다. 체내 투약이나 시술뿐만 아니라 체외 장치 등을 통하여 연명의료기술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기능향상(enhancement) 기술을 발전시킬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죽음조차도 심폐사에서 뇌사로 재규정되었듯이 이제 뇌피질사(neurortical death) 등 더욱 근원적인 기능퇴화로 재규정될 수도 있고 냉동보관, 뇌 이식으로 인한 영생 문화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의료현장의 막연한 생명 살리기라는 기존 가치로는 생애 말기에 존엄한 삶을 살 수 없게 되고 헌법에서 보장한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사회적으로 막대한 건강보험재정이 소요될 것이며 그만큼 적자재정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어떤 개별 연명의료기술을 건강보험에 포함해야 하는지에 관한 도덕적 정치적 난제에 부딪힐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의료기술혁신뿐만 아니라 고령층을 포함한 전 국민의 존엄하고 편안한 생애 말기 웰다잉을 위하여 의료기관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이후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등의 자기결정 절차의 사회적 합의와 지속적인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 결정양식의 개선과 의료기관 윤리위원회를 통해 장애인, 경제적 취약계층, 무연고자 등에 대한 연명의료 결정절차를 내실화하고 이에 덧붙여 연명의료의 유보 및 중단 시 받을 수 있는 전인격적인 호스피스 서비스의 시설을 수요에 맞게 확충하고 내실화하며 급성기 병원의 응급호스피스뿐만 아니라 독립형 호스피스, 낮 방문 호스피스, 가정호스피스 등으로 다양화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생애 말기 돌봄 및 임종 문화의 핵심인 근대가족의 해체가 가속화되어 1인 가구가 증가하며 그에 따라 자기결정에 기초한 웰다잉 정책이 필요하다. 그동안 임종 돌봄을 포함한 생애 말기 돌봄의 핵심 제도는 가족이었다. 근대가족이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재편되었으나, 후기 근대사회에 들어 핵가족조차 자녀 없는 부부가족 혹은 1인 가족 등으로 더욱 해체되고 있다. 여성가족부(2021년)에 따르면 1인가구는 전체가구 중 2020년 31.0%로 부부 가구도 22.1%로 급증하였다. 특히 통계청의 고령자 통계(2021.9)에 따르면 65세 고령층 가구 중에 1인 가구 비율은 34.2%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훨씬 더 높다.
이렇듯 근대사회의 해체와 더불어 1인 가구의 증가로 이제 생애 말기 돌봄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 이제 요양원, 요양병원, 중환자실, 호스피스 등 각 여건에 맞는 사회적 돌봄뿐만 아니라 의료적, 영적 돌봄이 필요하다. 하지만 생애 말기 돌봄은 그 기초가 되는, 자신의 존엄한 삶과 죽음을 위한 의식과 결정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즉 무엇이 생애 말기에 피돌봄자 자신의 가치 있고 유의미한, 존엄한 삶인지 알지 못할 경우 무수한 연명의료기술 중에서 어떤 의료적 돌봄이 어느 정도까지 필요한지를 결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초적인 돌봄을 넘어선 심리사회적 영적 돌봄의 제공방식을 결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3) 지속 가능한 초고령사회를 위하여 자기결정에 기초한 웰다잉 정책이 필요하다. 2025년으로 성큼 다가오는 초고령사회는 고령층의 증가로 사회적으로 부양 부담이 급증한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2020년 15.7%에서 2030년 기준 일본의 고령인구비중인 24.8%보다 높은 25.5%에 기록하며 2040년에는 전체 인구의 1/3을 넘어선 34.4%에 이르며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늘어나는 고령층 50% 이상은 노후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답하고 있으며3) 그만큼 부양 부담이 사회적으로 클 것이며 그에 따라 세대 갈등 또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령층의 유병장수는 생애 말기 자기결정 문화 확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65세 이상 고령층의 69.2%가 3개 이상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김순은·서이종 등, 2018) 75세 이상 고령층의 70.2%(2019년)가 5개 이상의 약을 만성적으로 복용하고 있으며 그 비율 또한 증가하고 있다4) . 뿐만 아니라 대한치매협회(2021. 2)에 따르면 75~79세의 치매 발생율은 12%, 80~84세는 21%에 이르고 85세 이상 초고령층에게서는 40%에 이른다고 보고하고 있다. 때문에 80세 이상 장기 요양 인정자 비율이 2015년 18.7%에서 2020년 26.8%로 증가하여 장기 요양 및 간병비의 부담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 또한 만성적 적자가 예상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2015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사망 전 1년간 평균 진료비는 1,529만 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서이종 등, 2021).
생애 말기 상황과 문제점 자기결정에 기초한 웰다잉 정책에 비추어
1) 생애 정리 문화
노년층에게 죽음은 상수다. 그만큼 자신의 생애를 정리할 필요성이 늘어난다. 물론 생각하는 빈도는 상당하며 나이가 들수록 늘어난다. 자주 혹은 종종 생각한다는 비율이 75세 노년층에서 56%에 이른다. 떠오르는 감정 또한 복합적이다. 편안하다는 응답이 11%, 아무렇지 않다는 응답 또한 34%에 이르지만, 불안하다 12%, 두렵다 22%, 외롭다 14% 등 복합적인 감정을 갖는다. 학력과 소득이 낮을수록 죽음 불안은 상대적으로 높다(김순은·서이종 등, 2018). 아마도 이러한 죽음 불안 해소를 위하여 죽음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올바른 인식(서이종 등, 2021)과 더불어 자신의 생애를 정리해 놓는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자서전이나 인생 노트를 쓰면서 꼭 챙겨야 할 가족 및 친구, 의료인의 연락처, 부동산 서류 및 통장번호뿐만 아니라 기념이 되는 중요한 사진이나 증거물들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남은 삶을 더욱 유의미하게 보내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2) 연명의료결정 및 호스피스 문화
「연명의료결정법」 본격 시행 이후 생애 말기 연명의료결정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여 2021년 9월 177,326명에 이르고 있다. 환자가 의식이 있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여 결정이 이뤄진 비율이 33.1%, 의식이 없어 환자 가족 2인 이상의 진술에 의해 이뤄진 경우 33.5%로 많으며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에 따라 이뤄진 경우는 29.5%로 소폭 줄어드는 추세이다. 취약계층의 경우 환자가 가족 부담을 염려하여 스스로 자신의 연명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반대로 의식이 없어 가족 결정이 환자의 연명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 좀 더 취약성이 결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취약성에 대한 체크리스트 등을 사용하여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3) 유산 및 유품 정리 문화
생애 말기 남은 유산 및 유품 처리는 가족주의에 근거하고 기부 등 사회적 환원은 법적 문화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서는 제사를 지내는 물적 토대로서 재산 상속을 장남이나 장손에게 단독 상속되는 문화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장남 단독은 차남 이하 다른 아들뿐만 아니라 딸에 대한 차별을 의미하였고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1977년 민법 개정을 통해 법적 상속분을 정한 균등 상속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유류분 규정은 사회변화에 따라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평균수명이 날로 늘어나 80세를 넘어섬에 따라 80~90대 고령 사망자가 많아지면서 피상속자가 50~60대에 이르는 노노상속으로 변화되고 있다. 때문에 고령 배우자의 생활 안정은 중요해지지만, 대신 자녀가 이미 가정을 이뤄 손자가 자립하여야 할 나이대에 이르고 있어 자녀의 자립이라는 유류분의 도입 취지를 상실한다.
둘째,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섬에 따라 만성질환으로 유병장수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초고령층의 증가로 가족의 부양 및 간병 기간이 장기화하면서 부양 및 간병 책임을 맡은 자녀와 그렇지 않은 자녀 간의 갈등이 증가하고 있고 그 때문에 균분상속 및 무차별적인 유류분의 법적 권리 보장은 오히려 형평성을 해치는 문제를 낳고 있다. 즉 부양 및 간병을 도맡은 자녀(딸)의 상대적 박탈감이 증가하고 무임승차 성년 자녀의 상속권을 보장함으로써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선량한 미풍양속 침해를 조장하고 있다.
셋째, 자녀 독립 이후에도 살아야 할 노년의 삶이 길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적으로 자녀들에게 의무적으로 배분할 상속 유류분을 광범하게 보장함으로써 부모 재산은 내 재산이라는 의식을 조장하여 자녀들이 돌봄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부모의 황혼 재혼을 막는 등 노후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넷째, 재산형성은 가족의 기여 못지않게 이웃이나 사회공동체의 기여도를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유류분 규정은 재산 형성과정에서 가족의 기여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이웃이나 사회공동체의 기여를 부정하여 기부를 통한 유산의 사회적 환원을 막고 있다. 유산 기부 시 자녀의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 등을 통하여 고인이 아무리 기부의 숭고한 뜻을 표현하였다 하더라도 실현하기 어려우며 유산기부로 가져올 막대한 사회적 혜택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유류분 개정과 함께 유산처분의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법적 유언장 작성 뿐만 아니라 유언사유서를 작성하여 왜 배우자나 자녀에게 그런 결정을 하였는지를 설득하여 유산갈등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4) 장기조직기증 문화
조선시대 유교문화는 효문화를 근간으로 하고 있어 부모로 받은 몸을 훼손하는 것을 불효 중의 불효로 여겼다. 단발령 때 머리를 깎는 것조차 전통적인 효 이념에 대한 도전으로 여길 만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신의 몸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근본이라 생각하였다. 이러한 문화는 오늘날 몸에 칼을 대는 외과적 수술도 성형수술도 모두 부정적으로 보는 의식을 비롯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부검이나 장기조직기증 등 시신 훼손에 대한 강한 경계감을 낳았다. 문화적으로 자신의 신체 훼손을 경계하였으며 더구나 부모의 신체 훼손은 더욱더 경계하였다. 이러한 문화는 근대사회에 들어 병원의 치료문화가 일상화되어 다양한 의료적 혜택과 더불어 화장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등 여러 가지 변화를 보인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장기조직 기증 문화는 3%로 매우 열악하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로 장기조직 매매를 금지하여 자발적인 기증이 유일한 수단이지만, 매년 장기조직 이식 대기자는 증가하고 있다. 신장 이식 대기자가 2020년 2만 7,062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간장, 췌장, 심장, 폐 순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생존 시 기증하는 경우 기증자 자신의 자기결정이 중요하지만, 뇌사를 포함한 사후 기증의 경우 자신의 자기결정과 더불어 가족의 동의(거부권)가 필요하다. 배우자나 자녀의 감정적 수용과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기조직 기증은 수혜자 중심의 사회적 혜택을 홍보하여 기증자의 권리 보호에 아쉬움이 있다. 특히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불법 매매를 방지하기 위하여 관리의 투명성 및 편리성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고, 기증자의 권리 보호에는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명의료결정법」 전면 시행 이후 뇌사자의 경우 기증 의사와 당사자의 연명의료결정 의사가 충돌될 때 의료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뇌사자에게도 기증자의 생애 말기 존엄한 삶과 죽음의 권리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5) 상장례 및 사별 가족 치유 문화
우리 사회에서 사후 장례에 대한 준비나 자기결정은 생애 말기 자기결정 문화 중에서 그 빈도수가 가장 높다. 보건사회연구원의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서 사후 장례에 대한 준비나 자기결정은 노년층 전체의 27.4%에 이른다. 가족 내에서 부모의 죽음에 대해 미리 논의하지는 않지만, 상장례에 대한 의사표시는 늘고 있다. 본인의 시신 처리에 대해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는 비율도 20.6%에 이르지만 화장해달라는 비율(67.8%), 매장을 해달라는 비율(11.6%) 등이다. 하지만 그 외 상조회 가입, 수의 등이 장례 준비의 대부분(79.6%)일 정도로 제한적이다. 그만큼 제한적인 의사표시로 인하여 가족들이 가족 중심의 장례를 선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5) 쉽게 상조회 등의 권유에 따라 혹은 사회적 체면 문화에 따라 허례허식의 과다한 장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법제도 측면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률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나 보건 위생적 처리에 치우쳐 있고 시민사회의 사회규범에 맡기고 있다. 그만큼 상장례에 대한 자기결정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고인이 원하는 바를 분명하게 (자기)결정하면 그만큼 유족들이 더욱 내실 있는 적절한 장례 의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상장례 의식이 유족들의 애도뿐만 아니라 고인의 추모가 중요한 의례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고인이 평소 자신의 삶을 정리한 자료를 기초로 추모문을 작성, 조문객에게 배포하면 훨씬 더 내실 있는 상장례 의식이 될 것이다.
상장례뿐만 아니라 사별 가족 치유에 대한 부분도 매우 중요하다. 사실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 초고령 사망자가 늘고 있어 남은 초고령 배우자의 삶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취약계층의 경우 경제적 자립이 문제가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별의 상처(트라우마)와 외로움이 상당히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그만큼 치매 등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산상속을 제외하고는 사별 가족 치유에 대한 자기결정이 없다. 때문에 생명보험, 손해보험, 산재보험 등에서 사별 가족 치유 프로그램을 사회공헌 차원에서 운영하는 것을 법제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서이종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 동법은 미국의 환자의 자기결정법(Patient’s Self Determination Act)에 비해 생애 말기 환자의 자기결정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지 않다(서이종, 2018). 동법 3조 기본원칙에서 생애 말기에도 “환자는 최선의 치료를 받으며… 시행될 의료행위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2항)고 명시되어 있으며 “의료인은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고…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며 그에 따른 환자의 의견을 존중하여야 한다”(3항)고 규정하여 최선의 치료에 배치되는 환자의 의견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모호하게 남아있다.
2) 회복 불가능한 말기상황에 대해 자신에게 말해야 한다는 의견이 60%에 이르며 가족을 통해 알려야 한다는 의견이 29%에 이른다. 또한 85% 이상이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반대하는 의견을 갖고 있다(김순은, 서이종 등, 2018).
3)통계청,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2021.12.16
4)보건복지부/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0, 2019년 기준 보건의료 질 통계, 2020.11
5)가족 중심 장례에 대해 찬성 비율은 58.9%, 반대 비율은 13.1%이며 나이가 젊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가족 중심의 장례를 선호한다(여성가족부, 2021, 제4차 가족실태조사 분석 연구, 2021.4).
참고문헌
• 김순은, 서이종 등, 2018, 노인의 건강한 노화 및 웰다잉에 관한 조사결과, 한국연구재단 보고서, 2018.4.
• 보건복지부/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0, 2019년 기준 보건의료 질 통계, 2020.11.
• 여성가족부, 2021, 제4차 가족실태조사 분석 연구, 2021.4.
• 서이종 등, 2018, 고령사회의 노년기 만성질환과 호스피스의 생명정치, 박영사.
• 서이종 등, 2021, 스스로 결정하는 삶의 마무리 필요성 및 종합적 제도 지원 방안,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연구결과보고서, 2021.12.
• Institute of Medicine of the National Academies, 2015, Dying in America: Improving Quality and Honoring Individual Preferences Near the End of Life, Washington: National Academices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