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8호 이슈

지역사회통합돌봄 선도사업의 성과와 과제

전용호 국립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부교수
#지역사회통합돌봄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돌봄
지역사회통합돌봄의 성과
지금까지 지역사회통합돌봄은 16개 선도사업 지역에서 다양한 모델을 시범적으로 운영하면서 그 가능성을 점검했다. 가장 많은 지역에서 실시된 노인 대상 선도사업을 통해 케어안심주택, 맞춤 영양 식사, 재활서비스, 스마트 돌봄서비스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와 인프라가 구축 및 제공되기 시작했다.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노인 돌봄과 관련된 각종 정보제공과 욕구사정, 케어회의 등을 실시하고 있다. 노인들이 쉽게 지역에서 돌봄서비스에 접근해서 이용하도록 행정체계를 개편한 것이다.
이처럼 지역사회통합돌봄은 노인 돌봄을 기존의 노인장기요양보험과 노인맞춤돌봄서비스와 같은 특정 제도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의 공공과 민간의 각종 기관이 대거 참여해서 지역주민의 욕구에 적합한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공급자가 아닌 이용자의 입장에서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의 필요성을 인식해서 전국적으로 무려 60여 개 이상의 기초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지역사회통합돌봄 사업을 준비 및 실시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공감대를 얻은 것이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은 노인 돌봄을
기존의 노인장기요양보험과
노인맞춤돌봄서비스와 같은
특정 제도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의 공공과 민간의 각종 기관이
대거 참여해서 지역주민의 욕구에 적합한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의 주요한 이슈
그러나 지역사회통합돌봄은 이제 걸음마를 겨우 뗀 상태이다. 여러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진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지역사회통합돌봄법(안)을 의원 입법으로 발의했지만, 적극적인 추진 의지가 없었다. 법안 내용에 대한 논란이 많아 사실상 논의가 중단된 상태이고, 새로운 대체법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간 실시된 지역사회통합돌봄 선도사업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냉정하게 살펴보면서, 향후 제도적 실천적 개선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선도사업의 대상자, 서비스, 전달체계의 측면에서 각각 이슈를 살펴보자.
1) 중증 노인의 소외와 여전히 많은 사각지대
첫째, 선도사업에 참여한 노인 대상자는 주로 경증의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이용자였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이용 노인은 중증의 대상자인데, 오히려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선도사업에서 소외되었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의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노인이 살던 집과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과 같은 시설로 입소하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시설에 불필요하게 입소한 노인들이 퇴원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장기요양보험에서 재가급여를 이용하는 노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능 저하로 인해 시설에 입소할 가능성이 커지므로 이들이 가장 시급한 돌봄의 대상자이다. 즉, 거동이 불편하거나 와상상태, 치매를 가지고 있는 노인으로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다. 그러나 현재 장기요양보험제도는 기본적인 신체 수발과 가사 수발 중심으로만 제공되고 있고, 서비스 시간도 3~4시간밖에 제공되지 않아 중증의 노인을 돌보는 가족의 부담은 매우 높은 상태이다. 최근 들어 간병살인, 간병자살, 간병우울, 영케어러 등의 끔찍한 사회 문제가 계속 불거져 나오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런데도 선도사업 지자체는 경증 노인을 중심으로 사업을 했다. 왜 그럴까? 지자체들은 그간 장기요양보험은 지자체 사업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중증노인을 신경 쓰지 않은 오랜 관행이 있다. 더욱이 장기요양보험 이용자에 대한 등급과 서비스 내용 등에 대한 전산망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고 정보 제공에 매우 소극적이어서, 지자체에서 상시적으로 접근해서 세부적인 서비스 이용현황 등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대상자에 대한 발굴과 서비스 제공이 단계적으로 이뤄지는데 기본적인 정보 접근부터 벽에 부딪히고 있다. 따라서 지자체는 오히려 행복이음 전산망으로 정보 접근이 용이하고, 직접 사업을 관리하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와 같은 경증대상자를 위주로 선도사업을 한 것이다. 물론 경증노인의 중증화를 지연시키는 예방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사회통합돌봄에서 다양한 서비스가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중증의 장기 요양 노인일 것이다. 예산의 효율적인 사용과 사업의 고도화 측면에서 장기 요양 노인에게 우선 제공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최근에 사회적으로 장기 요양 서비스만으로 재가에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중증 노인이 늘어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집단 중 하나는 보호자가 없는 치매나 중풍 등의 독거노인이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음식과 치료 등을 거부하고 그저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는 ‘자기 방임’ 노인도 계속 늘고 있다. 자녀들이 재산이 없거나 중증의 아픈 노인을 돌보지 않고 가족관계를 단절하면서 사실상 버려진 상태에서 질병과 고령 등으로 힘든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이들은 악취나는 낙후된 주거에서 필요한 의료서비스도 이용하지 못한 채, 사람들과의 교류도 없이 깊은 질병과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다. 요컨대, 지역사회통합돌봄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노인은 늘고 있는데 오히려 선도사업에서 소외되고 있다.
2) 보건의료 서비스의 취약성
둘째, 선도사업 지역에서 다양한 서비스의 시도가 이뤄졌다. 현재 장기요양보험은 주로 요양보호사가 제공하는 방문요양서비스 중심으로 제공되었던 것에서 탈피해서, 노인의 영양 상태를 고려한 맞춤형 식사가 제공되고 안전하고 편리하게 거주할 케어안심주택의 설치와 집수리 등으로 활성화되었다. 보건의료 영역에서 의사의 방문 진료, 통합 방문간호, 방문 재활, 한의사 방문과 같은 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돌봄의 영역을 직접적인 수발과 관련된 사회적 돌봄에 국한하지 않고 보건의료, 주거, 복지 영역 등으로 대폭 확대한 것으로 이용자 중심주의에 근거해서 필요한 욕구에 대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시도다.
그러나 지자체에서 보건의료서비스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소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재활서비스는 복지선진국에서 최근에 가장 활성화된 서비스 중의 하나인데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작업치료사나 물리치료사 인력의 채용과 활용에 소극적인 경우도 있었다. 재활서비스는 장기요양보험에 신규 급여로 도입하는 것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통합 방문간호, 방문 재활 등과 같은 신규 서비스와 추가 서비스 시간을 제공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어야 했다. 특히 현재의 노인 돌봄 체계는 주로 단순한 사회적 돌봄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장기요양보험은 방문요양 중심의 단순한 가사 수발과 신체 수발로 제공되고 있어서 노인의 신체적·정신적 기능을 실질적으로 유지 및 개선하는 데 큰 한계가 있다. 마찬가지로 노인맞춤돌봄서비스는 단순 안부 확인 중심의 서비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합돌봄 대상 노인들이 여러 만성질환을 갖고 있고 신체적·정신적인 욕구가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보건의료서비스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한 서비스의 고도화는 노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한편, 일부 지역은 전체 선도사업 예산에서 맞춤형 식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보편주의에 입각해서 고소득층에게 무료로 도시락을 제공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케어안심주택도 노인의 생활반경 등을 고려해서 설치되어야 하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너무 외진 곳에 설치되어서 노인이 입소를 꺼리거나 거부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3) 공공 전달체계의 미흡한 역량과 분절성
셋째, 공공의 전달체계에서 돌봄과 관련된 전담 인력을 읍면동에 배치하고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큰 변화다. 최근에 읍면동은 주로 찾아가는 보건복지 서비스를 통해서 복지에 소외되고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 한부모가족 등을 발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왔다. 이 중에서 체계적인 사례관리가 필요한 경우에 통합사례관리 인력을 통해서 공공의 다양한 자원을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찾아가는 보건복지 서비스와 통합사례관리는 주로 저소득층의 빈곤과 실직 등의 이슈에 집중하면서 건강과 돌봄 문제는 체계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사회통합돌봄을 통해서 돌봄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확대 제공하게 된 것이다. 특히 노인과 상담, 욕구사정, 서비스 계획 수립, 서비스 연계, 고난이도 사례 케어회의 등을 실시하면서 체계화를 도모했다.
하지만 일선 읍면동에 배치된 공무원이 질환에 걸린 노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제대로 된 욕구사정을 하는데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해 피상적인 욕구사정을 실시하고 단순히 서비스를 연계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배치된 공무원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실시해야 하는데 단기간에 하기 어려운 일이다. 보건복지부가 적극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위한 지원시스템을 가동해서 지원했어야 했다. 물론 한국보건복지인재원과 컨설팅단 등을 조직해서 일부 지원했지만, 실질적인 역량 강화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흡했다.
더욱이 선도사업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도 부족했다. 일부 선도사업 지역은 시청 전담 인력이 3~4명에 불과해서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계속 선도사업 예산을 받아서 집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역의 많은 지자체가 선도사업 예산을 받기 희망하며 자체적으로 다각적인 노력하는 것을 고려할 때 아쉬움이 남는다.
이와 함께, 보건의료와 복지 기관 간의 협력을 시도했지만 많은 한계를 보였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은 주로 기초지자체의 복지국(‘복지정책과’ 또는 ‘통합돌봄과’, ‘통합돌봄팀’ 등)에서 주도적으로 실시한 경우가 많았다. 노인에게 보건의료와 복지의 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역 병원,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의 보건의료기관과 복지 영역의 다양한 기관이 협조적인 체계를 구축해서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도록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의 발생으로 당초에 통합돌봄 업무에 동참했던 보건소 소속의 많은 간호 인력들이 이탈했고, 보건소는 인력과 권한 등의 축소에 대한 우려로 갈수록 협조하지 않는 사례가 많아졌다. 심지어 선도사업 우수 지자체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건의료와 복지 영역의 뿌리 깊은 분절성 및 배타적인 문화와 철저히 분리된 재정과 업무 영역 등의 오랜 관행이 쉽게 바뀌지 않은 것이다.
사실 다른 기관과의 서비스 연계, 조정, 통합을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간 중앙정부는 이를 위한 정책적인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일선 기관들이 알아서 해줄 것을 일방적으로 요청했을 뿐이다. 그러나 보건의료와 복지의 통합은 사실 많은 복지선진국들도 어려워하는 주제다.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국가 일부만이 고도의 공공성에 기반한 통합적인 데이터시스템의 구축과 전문 인력에 대한 행·재정적인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환경이 조성되어야 비로소 협력적인 거버넌스가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 지역사회통합돌봄 선도사업 과정 중에서 ‘공공-민간’ 간의 보건의료와 복지 기관들은 그래도 협조를 위해 시도했지만, 오히려 ‘공공-공공’ 간 보건의료와 복지 기관들의 협조가 더 어렵다는 아우성이 현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들이 법적 근거 등을 핑계로 사실은 자기 기관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업무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중앙부처의 오랜 칸막이 및 실적주의 문화 등으로 인한 분절적인 전달체계는 통합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장애물이다.
"매년 노인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은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전환점에 선 지역사회통합돌봄
지역사회통합돌봄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환점에 서 있다. 재택의료, 장기요양 통합판정 도구 도입, 노인맞춤돌봄서비스와 보건 서비스 등과의 연계 등이 국정과제로 포함되어 있다. 그간 지역사회통합돌봄 선도사업의 연속성에서 보건복지부가 준비한 사업들이 국정과제로 포함된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된 ‘통합돌봄 쇠퇴론’을 감안할 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된 것일까? 아니면 의지가 없는 것일까? 아직까지는 지역사회통합돌봄을 정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사회서비스 전반의 진흥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돌봄의 핵심 패러다임인 통합돌봄을 중요한 정책과제로 강조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당장 지역사회통합돌봄 선도사업에 과연 얼마나 정책적인 무게가 실릴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물론 국정과제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추진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깊이와 속도, 방향 등이 아직 모호하다. 지역사회통합돌봄 법안 입법을 통한 제도적 장치 마련, 충분한 예산 배정을 통한 다수 지자체의 선도사업 참여, 보건복지부의 각종 통합돌봄 정책 과제에 대한 추진 의지 등이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은 정권의 이념과 관계없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반드시 나아가야 할 방향임이 틀림없다.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따지기 전에 우리 국민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인의 평균수명 연장으로 돌봄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족들의 돌봄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노인들은 복지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질 낮은 서비스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재가 서비스는 미흡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작업치료사, 요양보호사 등 전문 인력에 대한 수급과 처우개선 등은 요원하다.
매년 노인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은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매우 보수적인 입장에서 경제가 선순환하고 복지 재정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지역사회통합돌봄은 우리가 서둘러 가야 할 길이다.
전용호
국립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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