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19호 이슈

노인 사회보장과 공익활동지원

남기철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공익활동고도화 #질적개선 #사회보장
초고령시대 노인에 대한 사회보장으로서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
우리나라 사회복지 관련의 프로그램 중에는 서구 국가들과는 다른 독특한 것들이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이다. 통상 노인일자리사업으로 부르는 이 사업은 다른 서구 국가들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없다. 우리나라의 높은 노인빈곤율과 공적 연금체계의 취약성, 그리고 급속한 고령화 속도가 노인일자리사업의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 노인일자리사업은 기본적으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노인일자리사업 초창기인 2000년대 초의 자료들에서는 연금제도의 성숙과 안정화 시기까지 노인일자리사업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했던 바 있다. 노인일자리사업 출발 시점으로부터 20년이 넘게 시간이 지났지만 공적연금제도의 미성숙이나 노인빈곤의 문제는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도 노인일자리사업에서 노인의 빈곤 문제를 가장 중심에 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노인일자리사업이 그 자체로 노인 빈곤문제에 대한 주된 해결책이라 할 수는 없다. 여전히 공적연금이 노인빈곤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기제이다. 그렇지만 공적연금은 중장기적인 기여와 급여의 기제를 통해 현실 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현재의 국민연금 체계를 보아서는 당분간 노인빈곤 해결의 능력이 극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노인은 빈곤한 경우가 많고 생활에 필요한 재원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 노인의 높은 경제활동 참여율이 이를 나타낸다. 노인일자리사업이 시작되던 무렵인 2003년 기준의 국제적 통계자료를 살펴볼 때,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28.6%로 프랑스의 1.1%, 스웨덴의 10.2%, 미국의 14.0%, 일본의 20.2%보다 높고 OECD 회원국 평균인 11.3%의 2.5배에 이르는 수치였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노인 경제활동 참여율은 2022년 38.3%로 증가해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노인 경제활동 참여율을 보이며 OECD 회원국 평균인 16.3%의 2.4배에 달한다(김가원 외, 2024). 높은 노인빈곤율과 높은 노인 경제활동 참여율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나라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노인은 연령상으로 소위 경제활동인구에서 제외되곤 하는데도 우리나라의 노인은 빈곤상황 때문에 일을 멈출 수 없다. 우리나라 노인은 복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빈약한 복지 때문에 스스로의 근로활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힘들게 경주해야 한다.
그렇지만 사회보장이 일방적인 현금 이전과 같은 경직적 소득보장의 방식으로만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복지정책과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급여에는 현금과 현물, 서비스, 바우처 등 다양한 형태가 있고 ‘기회(opportunity)’ 역시 복지급여의 중요한 한 형태이다. 노인일자리사업은 일이나 사회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기회에 따른 활동을 자격조건으로 해서 현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제도에서 근로를 조건으로 해서 급여를 제공하는 조건부 수급과도 다른 의미를 가진다. 조건부 수급은 근로능력을 갖춘 대상자에 대해 생계급여가 그냥 주어질 경우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 등을 감안하여 근로를 조건화한 것이다. 그러나 노인일자리사업은 법적으로도 연령에 따라 근로능력이나 근로조건을 부과하지 않는 대상임에도 일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일을 의무화 혹은 조건화한다기보다는 일할 수 있는 기회의 제공, 일할 권리(right to work)를 보장하고자 하는 성격이다. (물론 근로와 관련해서 보장되어야 할 노동자의 권리나 근로자성 확보와 관련된 실정법상의 난점에 대응하는 성격도 있지만,) 최근에는 ‘일’이라는 의미를 사회적으로 유용한 가치 있는 ‘활동’으로 확장해서 조망하기도 한다. 원하는 노인에게 일과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 참여에 대해 급여를 제공하는 노인일자리사업은 높은 경제활동 참여율과 높은 빈곤율이 함께 나타나는 우리나라에서 노인에 대한 사회보장의 기제로, 노인복지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의 전형으로서 공익활동지원
노인일자리사업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노인공익활동지원사업, 노인역량활용사업, 공동체사업단, 취업지원사업, 노인친화기업과 기관, 현장실습 훈련지원사업 등 다양하다. 통상 공공형, 사회서비스형, 민간형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 중 공공형이 공익활동지원사업이다. 공익활동지원사업은 노인이 취약계층을 지원하거나 지역사회의 공익을 증진하는 활동을 하면서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사업이다. 일주일에 며칠, 반나절 정도의 활동을 수행하고 3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 참여하려는 노인은 각 지역별로 신청을 받아 경제적 욕구가 높은 빈곤한 노인이 우선적으로 선발되곤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받는 노인은 참여할 수 없다. 공익활동지원사업에서 사업참여 노인은 다른 취약노인의 생활을 지원하는 노노케어,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활동, 지역사회의 공익서비스 제공시설을 지원하는 활동, 노인의 경륜을 전수하는 교육활동 등 사회적으로 공익적인 활동을 수행한다.
20년 전 노인일자리사업이 시작된 이후로 노인일자리사업의 내용 자체가 다양하게 발전해 왔고 그 유형을 분류하는 기준이나 명칭도 자주 바뀌었다. 하지만 언제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해 왔던 것은 공익활동지원이다. 공익형, 공공형 혹은 사회공헌형 사업으로 명칭의 표현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언제나 전체 노인일자리사업의 절반을 훌쩍 넘는 압도적 비중을 차지해 왔다.
2024년 말의 보건복지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5년의 노인일자리사업 예산은 2조 1,847억원으로 109만 8천개의 노인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이 중에서 노인공익활동지원사업은 69만 2천개로 전체의 2/3에 달한다. 분명히 노인공익활동사업은 노인일자리사업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사업량의 측면에서도 전형이지만, 기본적으로 노인일자리사업은 공익활동지원사업을 토대로 해서 다양한 다른 방식의 사업들을 추가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물론 공적연금의 취약성이라는 근본적인 이유도 있지만) 노인이 참여하고 있는 경제활동의 수입이 취약하다는 고용의 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인들은 21세기 초까지는 농림어업 종사자가 가장 많았고, 현재도 단순노무, 농림어업 등의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에 집중되어 있다. 이제 베이비붐 세대의 높은 인적자본 수준을 보유한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과거의 노인들과는 양상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노인의 경제사회활동 양상도 달라지고 노인일자리사업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적절한 지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감안해야 할 것은 시장 상황에서 열악한 노인의 고용의 질이라는 상황은 쉽게 변화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노인의 인적자본도 높아졌지만 고용시장에서 부각되는 지식정보화시대의 요구수준은 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안정된 좋은 일자리의 총량이 늘어날 수 있는가도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또한 더 높은 연령대의 다수 노인은 여전히 인적자본이 취약해 좋지 않은 일자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한 실태와 사회적 대책 필요성이 이슈화된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몇천원을 벌기 위해 위험하고 고된 발걸음을 옮기는 노인들이 구도심의 폐지수거에서는 일반적인 양상이다. 현실의 노인 욕구를 감안한다면 공익활동지원은 여전히 노인일자리사업의 전형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익활동지원의 고도화는 노인일자리사업의 미래
노인일자리사업은 20년 전에 몇백억 수준의 예산으로 출발한 이후 이제 연간 2조원 이상의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으로 성장하였다. 연간 제공되는 노인일자리의 수도 연간 3만 5천개에서 시작하여 20년 동안 100만개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규모가 커졌다. 사업의 규모가 성장하면서 예산과 사업 내용에 대한 사회적 검증과 감시의 수준도 당연히 높아졌다. 노인일자리사업을 혹평하는 일각에서는 급여살포성 프로그램이라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굳이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시키면서 급여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에 필요하지만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공익적 활동을 수행한다기보다는,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목적에 천착하여 불요불급한 일들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지역사회 공공장소에 쓰레기가 많아 이를 치워야 할 공익적 필요성이 높아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인일자리사업의 공익활동 사업단으로 편성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일자리 급여를 노인에게 지급하기 위해 꼭 필요하고 시급한 것이 아니더라도 쓰레기를 치우는 활동을 만들어 ‘취로사업’처럼 운영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의 핵심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공익활동지원사업이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일자리사업이라면 계속 세금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에 약간의 지원이 있으면 그 후에는 노인일자리의 내용이 시장에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그 수익성에 기초하여 급여가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결국 노인일자리사업에서 공공형인 공익활동지원사업보다는 민간형의 사업, 공동체 창업이나 취업알선, 기업의 노인고용확대 지원 등을 중심으로 노인일자리사업의 재편을 요구하는 맥락과 같다. 이러한 비판에 이제는 과거의 노인과 베이비붐 세대 노인은 특성이 달라졌기 때문에 고도화된 일자리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결합되기도 한다. 역시 기존의 공익활동지원 노인일자리사업은 시대의 변화에 뒤처진 취로사업형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노인들에게 적절한 급여를 받을만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한 지원으로 노인들에게 이런 일자리를 많이 누릴 수 있도록 직접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노인일자리사업 지원을 통해 민간시장에서 노인들의 좋은 일자리를 백만개 이상 만들어 낸다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최근의 노동시장 상황에서 이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민간형 노인일자리사업에서 공동체 창업, 인턴, 취업알선, 노인고용기업에 대한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조금씩 양을 늘려가고 있지만 이를 지금의 공익지원활동을 갈음할 수 있는 수량으로 확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익지원활동은 사업의 기본적인 구조가 다소 고루하고 경직되어 보일 수도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노인일자리사업도 내용이 첨단을 달리고 선도적인 기획 내용을 포함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노인일자리사업은 노인일자리사업 관련 체계의 자체 욕구보다 사업의 표적인 노인의 욕구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현실의 노인욕구에 기반한 사회보장적 성격으로 공익활동지원사업은 계속 보강되어야 한다.
2023년부터 2027년에 해당하는 기간의 제3차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종합계획에서 보건복지부는 노인인구 10% 수준의 노인일자리 규모를 확충하고, 공익활동형 일자리는 안정적으로 제공하여 수요에 대응하고, 역량활용형과 민간형의 일자리는 전체 노인일자리의 4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정책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초고령사회와 신노년 세대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겠다며 상대적으로 민간형 일자리나 베이비붐 세대의 역량을 활용한 일자리를 늘리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공익활동지원사업은 전체 사업량 60% 수준의 절대적 비중을 나타내고 있다. 현실에서 노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당장의 사회적 위험에 대한 사회보장적 성격을 도외시할 수 없다.
앞으로 노인일자리사업의 방향에서 공익활동지원은 점차 줄여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장벽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보강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보강은 단지 사업량을 늘리는 것으로 의미가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급여인 활동수당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중장기적 계획을 가져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익활동사업에서 수행하는 활동의 내용을 국민 누구나가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공익적 가치가 부각되는 것으로 설계하고 고도화해 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공익활동’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단순한 일거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사회가 바라는 다양한 활동에 대한 참여 혹은 노인들에게 필요한 교육에 참여하는 활동도 공익활동에 포함할 수 있다. 종종 이야기되곤 하는 ‘참여소득’의 논의와 공익활동지원의 노인일자리사업을 연계해 볼 수도 있다. 최근 다양해지는 국가적 복지욕구를 반영한 다양한 새로운 복지사업들, 예를 들어 지역사회통합돌봄, 고립문제에 대한 대응, 주거지원과 지역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연계 등의 정책들과 노인일자리사업의 연계성을 고도화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특히 공익활동지원사업의 보강은 수행체계나 인력에 대한 투자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아이디어의 제안이 아니라 지역사회 내에서 공익적 활동을 실제로 창출 및 연계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예기치 않은 시기에 대선을 맞이하게 되었고, 새 정부의 구성에 따라 노인일자리사업 등 중요한 정부정책의 기본방향들이 재검토될 것이다. 또한, 법에 따른 노인일자리사업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시점이다. 변화나 새로움에 대한 반영은 중요하지만 노인일자리사업이 가지는 노인에 대한 사회보장적 성격,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공익활동지원사업의 보강과 질적 개선을 위한 투자가 소홀하지 않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 김가원(2024).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시행 20년 성과와 발전과제. KORDI ISSUE PAPER. 2024-07호. 서울: 한국노인인력개발원.
• 김가원·박경하·신상훈·조준행·강은나·남기철·이석원·이소정·최혜지·한정란(2024).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20년사. 서울: 한국노인인력개발원.
• 보건복지부 보도자료(2024.12.01.). “국민 행복 일자리, 노인일자리 사업 신청하세요”.
• OECD(각해년도). Labor Force Statistics.
남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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