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23호 권두언

통합돌봄 시대, 노인일자리사업의 새로운 역할

양난주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통합돌봄 #노인일자리 #지역사회돌봄 #돌봄관계망 #돌봄패러다임전환
2026년 3월부터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으로 지역사회통합돌봄사업이 확대되었다. 2019년부터 시작된 선도사업에 전국에서 16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여 한국판 커뮤니티케어정책 구현을 모색한 지 8년 만의 일이다. 2023년부터 추진된 두 번째 시범사업에도 12개 기초지자체만 참여했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된 2025년부터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전국으로 확대된 통합돌봄사업의 시행을 위해 촉박하게 대응해 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던 곳에서 나이 들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통합돌봄사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하며, 기존 사회복지사업 및 사회서비스와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 여전히 명료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는 시설·병원 중심 돌봄, 가족책임주의 돌봄 패러다임에서 지역사회 통합돌봄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舊)패러다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업과 관행에 대한 성찰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는 태도이다. 통합돌봄시대에 노인일자리사업의 새로운 역할과 과제를 찾는 노력도 여기 속한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통합돌봄사업은 고령자와 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성인을 지원하기 위한 지역 기반 사회적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우선 읍면동 창구에서부터 기초지자체에 이르는 공적 전달체계를 만들고, 요양병원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아우르는 판정 체계를 도입하고 지역의 다양한 의료·요양·돌봄 제공 주체들과 협력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질병이나 고령이나 장애로 인해 혼자서 거동하지 못하는 ‘성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익숙한 생활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가족이 돌봐줄 수 없으면 지역사회로부터 격리하여 시설에 보호해 왔던 종전의 사회복지와 차별성을 가진다. 아프거나 장애가 있거나 고령이어도 살아온 마을과 그 안에서 맺은 관계들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권적이고 존엄한 삶이라는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 지원할 때도 하나의 복지급여나 프로그램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건강과 필요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원을 연계·조정하여 ‘통합적인 돌봄’이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지향을 밝히고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현재, 이 아름다운 지향을 실현할 수 있을 만한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지역별로 충분히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의료와 장기요양제도에서 정부는 재정과 규제 책임을 주로 맡고 민간 주체들이 참여한 시장을 통해 공급이 이루어지도록 해왔다. 그 결과, 초기에 정부가 적은 재정을 투입했어도 민간이 설립한 시설에 의해 서비스 기반이 단기간에 크게 확대되었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주도하여 서비스를 표준화하고 대상별 사업별 제도로 만들어 도입하고 공급은 지역의 민간 주체들에게 맡겨둔 결과는 어떠한가? 서비스 전달체계는 파편화, 분절화되고 제도 간 형평성도 떨어졌으며 양적 확대에도 사각지대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아우성친다. 그뿐만 아니라 기관·지역 간 서비스 격차는 물론 서비스 제공 인력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통합돌봄’의 필요성을 부각한 배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통합돌봄 시대를 열어가려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사회서비스 제공 주체들은 가장 먼저 지역에서 발생하는 어려움과 필요에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노인일자리사업은 저소득 노인에 대한 보충적 소득보장 역할로 조명되어 왔다.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약 70%가 공익형 일자리에 속해 있다는 점이 노인일자리사업의 소득보장 기능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공동체형 일자리, 역량강화형 일자리, 고령자 인턴 등의 시도에서 단순 사회활동 이상으로 고령자 일자리사업을 자리매김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기도 한다. 노인일자리사업이 지렛대가 되어 고령사회에서 노동시장의 성격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도전은 의미 있고 유효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여전히 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로 높고, 공적 연금이 여전히 든든한 노후 소득보장제도가 되고 있지 못하기에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해 고령자의 소득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노인 일자리 유형이 정부 지원 급여 수준을 기준으로 구분된다는 점 역시 소득보장 기능을 보여준다. 그런데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해 소득을 보충한다고 해서 노인일자리사업의 수많은 참여자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해 온 유·무형의 가치와 성과가 간과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도 그러했지만 통합돌봄 시대를 구현하기 위해 지역사회의 고령자에게는 더욱 다양한 사회활동 참여의 기회가 필요하다. 돌봄을 가족 내부의 책임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로 확장하여 촘촘한 돌봄관계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 모두에게 요양보호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고령자의 건강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육체가 노쇠하여 거동이 어렵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 고립되고 위축되어 아픈 사람도 있다. 고령자 대부분에게 다양한 차원의 돌봄이 필요하지만, 그 내용과 방식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그물망을 짜기 위해 돌봄의 공적 전달체계를 잘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고 제도와 서비스 간 연계도 원활하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서 거동하기 어려워진 사람들을 찾아가는 지역사회 차원의 다양한 상호돌봄과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통합돌봄 패러다임을 통해 우리 사회가 시설중심 돌봄, 가족전담 돌봄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제도적 서비스의 발전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일상 속에서
서로 돕고 연결하는 다양한 실천들이 조직될 수 있어야 한다.
아프고 장애가 있고 노쇠한 주민들이 살아온 지역을 떠나지 않고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상당히 다양한 관심과 지원과 사회서비스가 필요하다. 현재 선택지는 요양병원, 요양시설, 주야간보호, 방문요양 등에 제한되어 있다. 표준화된 주간보호와 방문요양은 그 자체로 전문성을 높여야 하겠지만 노인일자리사업은 표준화된 서비스와 다르게 다양한 필요에 대응하는 지역 활동을 기획하고 지역사회에 고령자들이 서로 돕는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현재 통합돌봄사업을 추진하는 지역마다 무엇이 필요하고 부족한지 찾아 참여자들의 활동으로 엮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동안 노인일자리사업은 적지 않은 돌봄형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지역사회 돌봄의 연결망을 구성해 왔다. 통합돌봄사업을 계기로 노인일자리사업은 좀더 적극적으로 고령 참여자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지역의 관계망을 토대로 사회적 연대를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다양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생애주기에 따라 상이한 사회적 역할을 하면서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 통합돌봄 패러다임을 통해 우리 사회가 시설중심 돌봄, 가족전담 돌봄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제도적 서비스의 발전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일상 속에서 서로 돕고 연결하는 다양한 실천들이 조직될 수 있어야 한다. 통합돌봄 시대의 노인일자리사업은 단순한 소득보장사업을 넘어 지역사회 돌봄 관계망을 형성하는 사회적 기반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양난주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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