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15호 이슈

고독사 예방을 위한 지역의 역할과 과제

김은하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센터장
#고독사예방 #공동체의식 #사회참여
국내외를 막론하고 최근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현상 중 하나는 고립과 외로움으로 인한 고독사1) 발생이 아닐까 싶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영국에서는 2018년 1월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 직책을 신설하였다. 그 배경에는 정치 진영을 초월한 사회적 합의와 지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현대인의 고립과 외로움이 국가의 관심과 개입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고령인구 비율이 높은 일본 역시 2021년 2월 ‘고독 대책 담당 장관’을 임명하였다. 고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상징성을 넘어서 국가의 정책 과제가 되었다. 고립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별도의 인력을 배치하고 고독·고립 대책실을 출범시켰는데 정부가 사회의 자원을 투입하여 고독사 문제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국의 ‘외로움 담당 장관’ 직책을 모델로 삼아 서울시가 최초로 국장급 직책인 ‘돌봄 및 고독 정책관’을 마련하고 고독사 문제에 대응할 예정이다.
국가 차원에서 외로움과 고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노력의 과정에서는 사실 지역의 관심과 의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외로움과 고독이 내 옆의 이웃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서로의 필요와 욕구에 대한 관심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고독사 현황
전 세계가 고립과 외로움 문제에 주목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사회의 고독사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속에서 지역 차원의 노력과 관심의 중요성을 확인해보자.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독사 규모는 매년 전체 사망자의 약 1% 내외 수준이다. 2017년 2,412명에서 2021년 3,378명으로 증가하는 양상이며 연평균 8.8% 수준의 증가율을 보인다. 고독사 사망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층은 50∼60대로, 매년 50% 이상의 비중이다. 이는 대부분의 시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으로 최근 정부가 취약한 중장년층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2017~2021년 동안 고독사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경기(3,185명), 서울(2,748명), 부산(1,408명) 순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 지역에서 고독사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고독사의 분포나 양상이 다를 가능성을 추론해볼 수 있다.
고독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주거지는 ‘주택’으로, 매년 전체 고독사 발생 주거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고독사 위험군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아파트’보다는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지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므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함을 파악할 수 있다. 고독사 장면을 최초로 목격하거나 위기 상황을 신고한 사람은 ‘형제·자매’, ‘임대인’, ‘이웃주민’, ‘지인’ 순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택배기사’, ‘친인척’, ‘경비원’ 등이 포함되는데 결국 고독사 예방을 위해서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고독사 예방을 위한 정부의 노력
외국에 비해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우리 정부도 다양한 정책 노력으로 고독사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중이다. 그 내용을 주요한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데 지역 차원의 노력과 관심이 중요함을 보다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고독사 예방법)이 2020년 3월 31일 제정되어 2021년 4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고독사 예방법은 고독사를 예방하거나 관련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조치를 규정하여 고독사 발생을 최소화하려는 최초의 법이다. 최초 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고독사 개념이 두 번이나 변경된 점이 눈에 띈다. 제정 당시 고독사 정의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이었다. 최근의 정의는 2024년 2월 6일에 시행된 것으로,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임종하는 것”이다.2)
현재의 고독사 정의는 과거의 “홀로 거주”하는 요건이나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의 요건을 삭제하고 사망자의 “사회적 고립” 상태에 초 점을 맞추고 있다. 고독사 개념에 대해 보다 포괄적인 접근을 하고 있으며 “사회적 고립”이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더 가깝게 다가갔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사회적 고립은 결국 이웃과의 교류 단절, 일상영역에서 타인과의 소외를 의미하므로 지역은 외로움 문제에 개입하는 출발선이 된다.
둘째, 고독사 예방에 대한 최초의 기본계획인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년)이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되었다. 고독사 문제의 대응 주체가 여러 부처로 각기 흩어져 있고 시행 주체도 중앙과 지방으로 나누어져 있어 관리감독이 어려운 실정을 고려한다면 총체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체계화된 계획을 세웠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본계획에 제시된 4가지 전략은 ‘고독사 위험군 발굴 및 위험정도 판단’, ‘사회적 고립 해소를 위한 연결 강화’, ‘생애주기별 서비스 연계·지원’, ‘고독사 예방·관리 정책기반 구축’으로 구성된다. 이 전략을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고독사 위험군을 효과적으로 잘 발굴해서 이들에게 사람(관계망)과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해주고, 이러한 사업들이 잘 수행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고독사 위험군을 발굴하고 사람과 서비스를 연결하는 역할은 지역에서 수행되어야 하므로 사업 성공의 중요한 열쇠는 지역이 쥐고 있는 셈이다. 다만 중앙정부는 개별 지역이 고독사 예방 사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탄탄히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셋째, 2022년 8월부터 일부 지자체를 대상으로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을 수행하였다. 고독사 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하고 생애주기별 특성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연계하여 고독사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우수사례로 선정된 시군구의 사업 성과를 지역에 확산하여 공유하였다. 시범사업은 올해 7월 전국 229개 시군구로 확대될 예정이이다. 고독사 예방관리 서비스의 주요 내용은 청년, 중장년, 노인 등 생애주기에 따라 차별화된 개입으로 고독사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 1인 가구를 포함한 고독사 취약계층을 포괄하여 지원하는 것, 그리고 정보기술과 인적안전망 등의 민간자원을 연계하여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시범사업이 수행되기 이전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고독사 예방을 위한 노력을 독자적으로 추진해왔다. 고독사 문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도 있지만 복지 사각지대 발굴과 같이 고독사 문제와 맞물려 있는 다른 사업을 통해서 고독사 예방이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고독사 예방 사업은 지역별로 직간접적으로 보편화된 사업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시범사업의 의미는 지자체가 분절적으로 수행한 고독사 예방 노력을 중앙정부가 새로운 정책 어젠다로 설정하여 사업이 체계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외국의 고독사 예방 사례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사회구성원의 고립과 외로움의 문제를 해소하는 과정이 지역 중심 접근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본다면 외국의 경우는 고립 문제에 있어서 그 개입이 더욱 직접적인 것 같다.
영국의 사회적 처방은 외로움을 호소하는 당사자에게 의학적 진단 대신 거주 지역에서 접근할 수 있는 동호회나 문화 프로그램을 연결해주어 사회적 교류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회적 처방은 의료인이 아닌 링크워커(Link Worker)가 당사자와 함께 개개인의 관심 분야나 성향을 바탕으로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1970년대 ‘고독사’라 용어를 처음 만든 일본에는 ‘고독사 제로운동’이 있다. 고독사에 취약한 지역사회 주민을 위한 소통 공간을 마련하고 언제든지 원하면 상담받을 수 있는 상담전화를 개설하는 등 고립된 이들이 지역과의 연결고리가 두툼해지도록 한다. ‘안심생활창조사업’은 우편 배달원이나 가스 검침원들이 업무시간 중에 고독사 위험의 징후를 발견하면 바로 신고하는 방식으로 지역의 촘촘한 인적망을 활용한다.
2004년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세대 간 동거계약’ 제도는 청년이 저렴한 월세를 내고 노인 소유의 주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고독사에 취약한 이들이 외로움을 해소하고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계약내용에 포함된 ‘함께 산책하기’나 ‘매주 1시간 대화하기’, ‘주 1회 저녁 같이 먹기’ 등의 쁘띠 서비스는 세대 간 유대를 강화한다.
그 밖에도 호주는 ‘독거노인 입양’ 제도를 통해 홀로 사는 노인과 시민을 연결하고자 하며 덴마크나 스웨덴 등은 코하우징(Cohousing) 서비스를 통해 주방이나 세탁실, 식당 등의 공간을 공유하는 주거 공동체를 운영하여 고립을 해소하려고 한다.
고독사 예방에서 지역의 중요성과 과제
고립의 문제는 결국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그 뿌리가 되어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역 중심의 개입이 필수불가결하다. 대다수 정부사업이 그렇지만 고독사 예방에 있어서는 특히 지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지역별 여건이나 인프라 차이가 장애로 작용하지만 이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을 전제로 한다면 결국 지역 고유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사업 성공의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에서 최근 확인되는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지역을 중심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접근과 지원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역은 주민의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며 동시에 취약한 주민의 상황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고독사 위험군을 발굴하는 과정이나 이를 지원하는 과정 전체가 모두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역은 고독사 예방에서 구심점이 된다.
정부의 여러 노력의 결실을 확인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다만, 최근의 시범사업을 통해 확인한 교훈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고독사 예방이 고독사를 사전에 예방하고 이들을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 고립된 이들의 사회적 관계망 형성을 위한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관계의 형성은 사람이 필요한 과정인데 영국의 사례를 고려해본다면 노인일자리나 자활사업을 활용하여 외로운 이들의 욕구와 필요를 확인하고 연결의 느낌을 경험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일자리나 자활사업을 참여하는 자체가 사회적 고립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사업에 참여하는 대상자에게 고독사 위험군을 사회적으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역 입장에서는 고독사 예방 과정에서 부족한 인력문제를 해소할 수 있으며, 사업 참여자에게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민간기관과의 협업도 중요하다. 사람에 대한 연결과 더불어 서비스에 대한 연결에 있어서 민간기관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지역 내에서 민간과 공공의 긴밀한 파트너십은 고립된 이들을 발굴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비법이 된다.
앞서 소개한 일본의 ‘고독사 제로운동’은 의례적인 필요성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이 운동의 배경에는 2000년대 초반 치바현의 도키와다이라 아파트 단지에서 잇달아 발생한 고독사 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살던 60대 남성이 사망 후 3년 만에 백골로 발견되고, 50대 남성은 숨진 후 4개월 만에 고독사로 발견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였다. 이들은 사회에서 고립된 상태였고 이웃과 단절된 생활을 유지해왔다. 누구도 이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같은 단지의 이웃들에게 이들의 존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본 사회는 무관심 속에서 발생한 고독사에 대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는 ‘고독사 제로운동’으로 연결되었다. 실천의 주체로서 지역은 고독사 예방을 위한 중요한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고독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 연대의 필요에 대한 공감대 형성은 지역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기 위한 원동력으로 작용해야 한다.
김은하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센터장
1) ‘고독사’ 개념에 관해 많은 논의가 있으며 고독사가 아닌 고립사가 더욱 적절한 표현이라는 데에는 전반적으로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다만 본고에서는 편의상 법에 명시된 바대로 공식적인 용어인 ‘고독사’를 사용한다.
2) 2023년 6월 13일에 시행된 고독사 정의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으로, 제정 당시 정의에서 “혼자 임종을 맞는” 조건이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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