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일자리사업은 지난 20년 동안 고령층의 소득 보전과 사회참여 확대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참여한 어르신들은 단순히 일정한 수입을 얻는 것을 넘어, 사회와의 연결감을 회복하고 하루의 생활 리듬을 유지하며, 자신이 여전히 사회에 필요하다는 자존감을 확인하게 된다. 국내외 연구에서도 규칙적인 사회활동은 노인의 신체 기능 저하를 늦추고 우울증 발생률을 낮추며, 장기적으로 의료·돌봄 비용 절감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사업의 필요성과 사회적 배경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고령자의 저소득 문제가 자리한다. 통계청 ‘2024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1),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38.9%로 OECD 평균(13.1%)
2)의 3배에 달한다. 국민연금 평균 수급액은 월 62만 원 수준으로, 1인 기준 최저생계비 약 125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자산 소득이 없는 다수의 고령층은 근로소득이 사실상 유일한 생계 수단이기에, 건강이 불안정하더라도 무리해서 일자리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현장에서 자주 듣는 “아프지만 하루라도 더 나와야 한다”는 말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기간 노인일자리 사업은 단순한 소득 보조를 넘어, 고령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사회의 활력을 더하는 핵심 제도로 자리 잡아 왔다. 초기에는 공익형 중심으로 출발하여 환경정비나 질서 유지 등 단순 반복형 업무가 대부분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형·사회서비스형·취업알선형으로 사업유형이 다변화되었다. 이를 통해 단순 노무 제공을 넘어 돌봄 서비스, 지역경제 기여, 전문 경력 활용 등으로 활동 영역이 확장되어왔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사업 규모 확대를 넘어 질적 전환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시장형 사업을 통해 소규모 창업과 지역 경제활동이 가능해졌고, 사회서비스형을 통해 아동 돌봄·노노케어·장애인 보조 등 사회적 돌봄 수요를 충족할 수 있었다. 또한 취업알선형 사업은 경력과 전문성을 가진 노인이 자신의 경험을 다시 노동시장에 투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그 결과 노인일자리는 단순 소득지원 정책을 넘어 고령자의 사회참여, 자존감 회복, 신체·정신 건강 증진, 지역사회 공익 강화 등 다층적 성과를 낳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사업유형의 변화와 확대가 곧 노인일자리의 다양성 확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노인일자리는 점차로 고령자의 능력과 욕구에 맞는 맞춤형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체계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보여지나 좀 더 발전적인 모습을 기대하며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안전한 사회, 고령자 안전 확보
고령자의 안전사고는 근무 현장뿐 아니라 출퇴근 과정에서도 빈번히 발생한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3), 2023년 65세 이상 근로자의 산재 승인 건수는 약 1만 3,000건이며, 이 중 20% 이상이 출퇴근 중 발생했고, 나머지 80%는 작업 도중 발생했다. 특히 넘어짐·미끄러짐(37%), 근골격계 부상(22%), 기계·도구 취급 중 부상(15%) 등이 주요 원인이었으며, 무더위·혹한 등 기상 조건이 사고 발생률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이러한 위험을 줄이려면 노인일자리 사업 계획 단계에서부터 참여자 선발 규정이 변화해야 한다. 현재처럼 소득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건강 상태, 인지 기능, 학력, 경력, 생활습관, 거주 환경 등 근로관련 위험성을 전반적으로 평가하여 직무를 배치해야 한다.
또한, 근무환경에 대한 위험성 평가가 형식에 그치지않고 계획-실행-개선-모니터링단계가 충실히 이루어지며, 실내외 근무환경, 작업도구 노후화, 출퇴근환경, 대중교통 접근성등 다양한 위험성을 평가하고 개선하도록 해야한다.
기후위기는 이제 매년 찾아오는 현실이며, 2025년은 특히 숨이 막히는 극한 폭염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피해도 심각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4), 2025년 7월 1일부터 27일까지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13.3일로, 평년(3.7일)보다 3.6배 많았다. 폭염이 장기화되면서 일부 지자체에서는 혹서기에 노인 야외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실내 안전·직무교육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지만, 전국적으로 이런 대체활동 체계를 사전에 갖춘 경우는 여전히 많지 않았다. 국지적인 기후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지자체가 기상청의 공식 경보·주의보 발령 시 활동을 즉시 중단하고, 대체활동이나 교육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업의 계획 단계에서부터 기후위기 대응방안을 필수 항목으로 작성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초기사업 신청·계획서에 폭염·한파·미세먼지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 대체활동, 안전교육 계획(기본 및 추가)을 포함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 특성에 맞춘 대체활동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사전에 준비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폭염 경보 발령 시 참여자를 지역 내 무더위쉼터 점검 활동으로 전환하는 방안으로 이는 쉼터의 냉방 상태, 음료 비치 여부, 안내 표지판 점검, 취약계층 이용 여부를 확인하고 이상 발견 시 즉시 보고하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한 예로 인천의 **교회는 폭염이 한창이던 2025년 여름, 폐지를 줍는 노인일자리 참여 어르신들을 위해 예배당을 대체 교육장 겸 무더위 쉼터로 개방했다. 이 공간에서는 건강 교육, 스팸·피싱 예방과 같은 실생활 밀착형 교육이 제공되었고, 무료 급식이 함께 이루어지며 어르신들이 더위와 생계 위기를 동시에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5)
변화하는 노년층을 위한 사회참여형 일자리 활성화
우리나라 고령층의 학력 수준은 세대별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통계청 「2024 고령자 통계」
6)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중 대졸 이상 학력 비율은 2010년 8.6%에서 2024년 20%를 넘어섰다. 이들은 은퇴 이후에도 다양한 전문 지식과 경영·기술 경험, 외국어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현재 노인일자리사업의 구조는 여전히 단순 반복형 공익활동에 편중되어 있다. 사회서비스형(역량활용) 일자리가 존재하지만, 전체 일자리 규모에 비해 한정된 규모로 인해 고학력 노인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참여형 일자리는 고령자의 경력과 전문성을 사회에 환원하고 세대 간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학력 노인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역량 진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은퇴 전·후의 경력, 자격, 전문분야, 언어능력, 연구·창업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개인별 ‘역량 프로필’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직무를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데이터는 지자체, 대학, 공공기관, 민간기업과 연계하여 교육·멘토링, 정책 자문, 문화·관광 해설, 국제협력·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해외에서도 고학력·경력 보유 노인의 사회참여형 일자리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독일의 SES(Senior Experten Service)
7)는 1983년 설립 이후 은퇴 전문가를 국내외 기업, 학교, 기관에 파견하여 기술이전, 품질 개선, 교육 지원 등을 수행하는 세계 최대 시니어 전문가 네트워크다. 평균 연령 70세, 등록 전문가 1만4천여 명이 실전형 과제를 수행하며 산업과 교육 현장에 기여하고 있다. 미국의 Encore Fellowships
8)는 고숙련 은퇴자를 비영리·공공기관 프로젝트에 유급 배치하여 사회문제 해결과 조직 역량 강화를 돕는 프로그램으로, 은퇴자의 전문성을 사회적 가치로 전환한 대표 사례다.
미국과 유럽의 사회·문화적 배경이 우리나라와 상당히 상이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다가오는 2차 베이비붐 세대들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창업 자산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시니어 창업기금을 마련해 초기 사업화 자금과 브리징 자금을 지원하고, 성과 달성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고학력 노인을 위한 사회참여형, 지식창업형 일자리 확대는 단순한 소득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은퇴한 전문가의 경험과 기술을 지역사회와 산업 발전에 재투입함으로써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청년층과 고령층의 협업을 통해 세대 간 교류를 강화하며, 노인일자리사업의 질적 다양화를 이끌 수 있다. 나아가 이는 고령사회에서 생산적 사회참여를 지속할 수 있는 모델을 확립하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성장과 전략적 역할
법정조직이 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이한다. 지난 20년간 개발원은 노인일자리사업의 제도화와 확산을 주도하며, 전국적인 사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현장 지원 체계를 마련해왔다. 이 기간 동안 사업 규모는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고령자의 사회참여와 소득보전에 기여해 온 성과는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고령사회 심화와 기후위기, 안전문제, 노동시장 변화 등 새로운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질적 전환의 요구도 커지고 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경과가 아니라, 그간의 성과를 발판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할 시점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노인인력개발원은 국가 차원의 노인일자리·사회활동 정책 컨트롤타워로서,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과 지역 현장의 상황을 조율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제도 개선에 반영하는 역할을 강화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전국 단위의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직무 유형, 참여자 특성, 안전사고 현황, 기후위기 대응 실적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표준 직무 매칭 시스템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준수 매뉴얼, 기후위기 대응 지침, 안전교육 콘텐츠를 표준화하여 전국적으로 보급함으로써 안전과 기후 대응 역량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공익형·창업형·공동체형 등 사업 유형별 특성에 맞춘 소득보전 제도를 설계하고, 관련 법·제도 개선을 주도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9)
맺으며
노인일자리사업은 고령자의 존엄과 생존을 지키는 사회안전망이자, 고령사회 지속가능성의 핵심 정책이다. 저소득 고령자의 현실, 건강·안전 문제, 기후위기, 법·제도 사각지대 등 복합 과제를 해결하려면 안전 중심 직무 설계, 기후위기 대응 계획의 사전 작성 의무화, 공공자원 활용의 법제화, 참여 기준 재검토, 유형별 소득보전 장치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제 노인일자리사업은 단순히 ‘노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세대 간 연대와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키우는 국가 전략사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참여 어르신이 안전하게 일하며 안정된 소득을 얻고, 지역사회는 이들의 경험과 역량을 자산으로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어야하며,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 민간,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하는 거버넌스 체계가 뒷받침되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특히 설립 20주년을 맞은 노인인력개발원은 국내를 넘어 국제 무대에서도 인정받는 고령사회 정책 허브로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유럽의 선진사례처럼, 안전·기후 대응·직무 혁신의 표준을 제시하고, 각 지역의 모범사례를 발굴·확산하는 역할을 강화하길 바란다.
고령사회는 이미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이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노인일자리사업이 단순한 단기 소득 지원을 넘어, 노인이 안전하게 일하고 존엄을 지키며, 지역과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핵심 축이 되기를 기대한다.
1) 통계청, (2024). 2024 고령자 통계. 통계청.
https://kostat.go.kr
2) OECD, (2023). Poverty rate (indicator). OECD Data.
3) 고용노동부, (2024). 산업재해 발생 현황.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
4) 기상청, (2025). 2025년 7월 폭염일수 통계. 기상자료개방포털
5) 인천 해인교회가 2025년 7월 폭염 기간, 폐지 수집 어르신들을 위해 예배당을 개방하여 건강 교육, 사기 예방 교육, 무료 급식을 제공한 사례. CBS 노컷뉴스, 2025.07.22,
https://www.nocutnews.co.kr/news/6373086
7) Senior Experten Service, 2023,
https://www.ses-bonn.de
9) 유럽연합(EU) 산하의 ‘European Network for Ageing’은 각국의 고령자 고용 및 사회참여 정책을 연계·조율하는 기구로, 직무 표준화, 교육·훈련 프로그램 개발, 기후위기 대응 가이드라인 배포, 고령친화 직장 인증제 운영 등을 수행한다. 또한 정책 연구와 현장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여 회원국 간 모범사례를 공유하고, 공동 재정 지원을 통해 혁신적 노인 고용 모델을 확산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European Commission, European Network for Ageing Policy Report, Brussels: EU Publications, 2024)
참고문헌
• 통계청. (2024). 2024 고령자 통계. 통계청.
https://kostat.go.kr.
• OECD. (2023). Poverty rate (indicator). OECD Data.
• 고용노동부. (2024). 산업재해 발생 현황.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
• 기상청. (2025). 2025년 7월 폭염일수 통계. 기상자료개방포털.
•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법률 제19025호. (2022. 12. 27. 시행).
• CBS 노컷뉴스, “폐지 수집 어르신 위해 예배당 개방…건강·사기예방 교육과 무료 급식 제공,” 2025.07.22,
https://www.nocutnews.co.kr/news/6373086.
• European Commission. (2024). European Network for Ageing Policy Report. Brussels: EU Publications.
• Senior Experten Service. (2023). About SES. Senior Experten Service.
https://www.ses-bonn.de
• Encore.org. (2023). Encore Fellowships Program Overview. Encore.org.
https://encore.org/fellowships
이선미
시흥시노인종합복지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