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와 다문화사회
문화(culture)란 어떤 사회의 주민이나 집단이 가진 생활양식을 의미하며, 그 사람들의 가치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다문화(multiculture)는 이러한 기준이 되는 문화가 여러 개 존재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다문화’는 언어, 문화, 관습, 성별, 종교, 직업, 계층, 인종 등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여러 문화를 의미하며, 이러한 특성을 간직한 사회를 ‘다문화사회’(multicultural society)라고 한다.
다문화사회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여러 민족, 인종, 종족 집단으로 구성된 나라를 지칭하지만, 독일, 한국 등 외국 출신 이주민의 유입과 정착으로 주류 사회와 구분되는 여러 민족, 인종, 종족 집단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를 가리키기도 한다. 즉, 대량 이주는 국민 국가의 민족, 인종, 종족 집단 구성을 변화시킨다.
한국에는 외국 출신 이주민이 1980년대 말부터 들어왔고, 그 후 한국 사회는 다문화사회의 성격을 점점 더 강하게 띠기 시작하였다. 종족적, 문화적 동질 사회(homogeneous society)에서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로 변모한 것이다. 사람은 출신국을 떠나 외국으로 삶의 거처를 옮기더라도 원래의 문화를 간직한 채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게 일반적이므로, 1980년대 말부터 선주민과 이주민 간에 다양한 형태의 문화 교류가 이루어져 왔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기존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문화 접변(文化接變, acculturation)이 이루어진 것이다.
한편, 국내 언론 또는 학계 일부에서는 “OECD에서 ‘국내 외국인 인구의 비율이 5% 이상이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규정한다.”라고 주장한다. 이주민의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규정한다는 통념을 반영한 것인데, 이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OECD는 다문화·다인종 국가 기준을 설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 이주 없이 만들어진 다문화사회가 다수 존재할 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다문화사회를 정량적으로 규정하려 시도하지 않았다.
다문화사회는 인종 집단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 현실이지만, 때로는 다문화사회와 다인종사회가 동의어가 아닐 수 있다. 미국 CIA는 한국과 북한을 소수 인종 집단(ethnic minorities)이 존재하지 않는 “동질적”(homogeneous) 사회로 평가한다. 한국 사회에는 외국인 ‘개인’은 다수 존재하지만, 그들이 ‘소수 인종 집단’을 형성하고 있지 않음을 고려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채택한다면, 한국 사회는 다문화사회이지만 다인종 사회는 아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화갈등과 문화적 게토
다문화 상황은 옳거나 그르다, 좋거나 나쁘다 등의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적 기준이 여러 개 병렬적으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가치관의 혼돈을 경험하고, 때로는 문화갈등이 발생한다. 문화갈등은 ‘비공식 규범 간 충돌’과 ‘법·제도와 비공식 관습 간 충돌’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즉, 기존 한국인과 이주민 간의 ‘도덕규범·가치관’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과 ‘한국의 실정법과 이주민 출신국의 문화적 관습’ 차이에서 발생한 갈등은 그 양상이 다르다. 전자는 상호 이해 수준을 높임으로써 해소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에 따르라.”라는 서양 속담이 있듯이, 한국에서 생활하는 이주민이 한국 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출신국의 문화적 관습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기는 쉽지 않다.
다문화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는 근친혼(近親婚) 및 중혼(重婚) 금지 규범에 대한 도전이 가끔 발생하였다. 한국의 민법 제809조(근친혼 등의 금지)는 근친, 즉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간의 혼인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3촌 이상의 방계혈족 간 혼인을,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는 4촌 이상의 방계혈족 간 혼인을 허용하며, 이슬람 문화권 일부 나라에서는 ‘부계 4촌’(친사촌) 간 혼인, 즉 남자 형제들끼리 자신들의 아들딸 간 결혼을 당연하게 여긴다. 외국 출신 이주민이 한국 사회에서 출신국 문화를 간직하며 생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근친혼 금지 범위’ 관련 법률 위반으로 정부 당국의 제재를 받은 사례가 있었다. 한국 역사에서도 신라 김유신-김지소 부부, 고려 광종-대목왕후 부부 등의 근친혼 사례를 찾을 수 있으나, 이는 1,000년 이상이 지난 과거의 일이다.
또한, 한국의 민법 제810조(중혼의 금지)는 “배우자 있는 자는 다시 혼인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여 ‘일부일처제’를 공식적으로 견지한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권 일부 나라에서는 4처까지의 중혼을 허용하고 있으며, 서구 몇몇 나라에서는 폴리아모리(polyamory) 문화, 즉 개인이 동시에 여러 사람과 로맨틱한 또는 성적인 관계를 맺는 관행을 가진 경우도 있다. 한 외국인 남성은 본국에 처자식을 둔 사실을 숨긴 채 한국 여성과 결혼하고 본국을 드나들며 ‘두 집 살림’을 하다가 그 사실이 밝혀져 이혼하였고, 그 후 법무부는 혼인 파탄의 귀책 사유가 그에게 있다는 근거로 그의 체류 기간 연장을 불허하였다. 이주민 남성이 한국 여성과 결혼과 이혼을 여러 차례 거듭하여 형식상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나, 실제로는 이전 배우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례도 있다. 그렇지만 중혼 현상은 이주민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진 『아내가 결혼했다』에서처럼 폴리아모리를 영위하는 한국인도 있다.
이처럼 극단적 사례는 당연히 그 수가 매우 적지만, 기존 한국문화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점에서 극심한 문화갈등을 초래한다. 이로써, 다문화 상황은 구태여 해외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식탁 위의 다문화’ 이상의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즉, 다문화란 단순히 한국에서 튀르키예 음식을 먹고 중국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미묘하지만 무거운 사안들도 동반하는 것이다.
한편, 외국 출신 이주민의 수가 많아지면서, 그들은 다양한 형태의 사회집단을 형성해 왔다. 그들 중 일부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만, 다른 일부는 닫힌 자세로 자신들의 공동체에 몰입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공동체나 민족 또는 종교 집단 내부에 자신을 고립시킴으로써, 출신국 사회의 특수한 문화를 간직한 이주민 밀집 거주 지역(immigrant enclaves), 즉 ‘문화적 게토’를 형성한다. 문화적 게토 중 어떤 것은 오래가지만, 다른 어떤 것은 잠시 만들어졌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것들은 형성되고 변모하며, 나타나고 사라진다. 이주민이 문화적 게토를 형성하여 주류 사회의 문화를 풍요롭게 하지만, 때로는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특히, 극단적이고 폐쇄적인 게토는 사회의 위험 요인으로 간주된다. 경기 안산·시흥, 서울 영등포·구로·금천 등에는 이주민 밀집 거주 지역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중 일부에서 폐쇄적인 문화적 게토가 생겨났다.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하는 문화갈등의 씨앗이 국내에도 뿌려져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다문화 개념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는 2000년대 초 법·정책 개념으로 도입되었고,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면서 일상 용어로 확산되었다. ‘다문화’ 개념은 출신국, 체류 자격, 민족, 인종 등을 따지지 않고, 내국인과는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사회 집단으로 폭넓게 규정한 점에서 언중(言衆)의 마음을 얻었다.
한국 공론장에서 사용되는 다문화 개념은 다른 나라와는 다른 특수 용례를 지닌다. 이는 한국인과 외국인 간의 국제결혼 가족을 지칭하는 ‘다문화가족’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국제결혼 부부의 외국 출신 배우자 또는 그 자녀만 가리키는 용어로 변질되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 부부 또는 그 자녀를 지원 대상 다문화 가족에 포함하지 않는 것처럼, 언중은 그들을 ‘다문화’가 아니라 ‘외국인’으로 호명한다. 한국인의 국제결혼이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 간 결혼에 집중되어 있으며, 여성 결혼이민자의 출신국이 저개발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당사자들은 자신이 ‘다문화’라고 호명되는 것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곤 한다. 타인이 어떤 개인을 언급하는 지칭이나 호칭은 그의 ‘사회적 정체성’에 강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문화’ 개념이 오용될 경우, 그 집단 소속원을 주류 사회 성원과 구분하고 배제하는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공론장에서 ‘다문화’ 개념은 이민 또는 이주민 사회 통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프랑스 대한민국 대사관의 홈페이지 게시글은 “프랑스 다문화(이민) 정책”을 소개하고 있다. 이 글은 이민 정책과 이민자 사회 통합 정책을 설명하면서, 프랑스가 ‘공화주의’(republicanism)로 불리는 동화 정책(assimilation policy)을 취하고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다문화(주의) 정책은 동화 정책과 구분되는 개념임을 고려할 때, 이 글의 제목은 혼란을 야기한다. 다문화와 다문화주의를 둘러싼 개념의 혼란은 국내 언론에서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초고령 사회와 다문화사회
인구 고령화와 내국인 인구 감소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가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주민을 수용하여 공존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주류 사회와 이주민이 서로를 배제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포용과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가 당면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다문화사회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문화 다양성이 번영의 원천이 되는 사회를 설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