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제10호 이슈

일본의 웰다잉, ‘종활(終活)’의 시사점

김웅철 매일경제TV 국장
#일본사례 #종활 #엔딩노트
이웃 나라 일본은 세상에서 가장 늙은 나라이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3,620만 명이나 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70%에 달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연간 사망자가 140만 명을 넘어서면서 일본 언론에서는 ‘다사(多死) 사회’라는 말이 회자된다. 한국의 저출산 고령화 추세는 일본을 빠르게 쫓아가고 있다. 2025년 한국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요즘 국내에서 웰다잉에 대한 논의가 확산하고 있는 것도 그런 배경이 있다. 세계 최고령 국가 일본 구성원들의 죽음을 대하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이유이다.
일본에서는 웰다잉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웰다잉에 대응되는 용어로 일본에서는 ‘종활’(終活, 일본어 발음 ‘슈카츠’)을 사용한다. 종활이란 마지막이라는 뜻의 ‘종(終)’과 활동의 ‘활(活)’을 조합해 만든 조어이다. 일본 종활카운슬러협회는 ‘인생의 종말을 직시함으로써 나를 되돌아보고, 지금보다 더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활동’이라고 종활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국내 (사)웰다잉문화운동은 웰다잉을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죽음, 가족들과 좋은 관계로 끝맺는 죽음, 본인이 생사를 결정하는 죽음’으로 정의한다. 두 나라의 웰다잉 개념이 주체적인 죽음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일본의 종활이 한국의 ‘웰다잉’보다 좀 더 포괄적이고 적극적이다.
소원해진 가족, 그리고 ‘폐 끼치기 싫다’
종활이라는 말은 2009년 여름 주간아사히(週間朝日)가 ‘현대 종활(終活) 사정’이라는 연재 기사를 게재하면서 첫선을 보였다. 연재 초기에는 주로 장례나 장묘에 관한 정보와 사전 준비 요령이 담겼다가 후반에는 죽음 준비를 넘어 현재 인생을 잘 살기 위한 준비로 개념이 확장됐다.
일본의 장례문화는 1980년대 후반부터 큰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였다. 저출산으로 제사 승계자의 확보 곤란, 지역 사회나 가족과의 관계 소원, 장의 문화의 상품화 등으로 장례나 장묘 등 자신의 죽음과 관련한 절차를 스스로 결정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생전에 장례나 장묘 준비와 유언 등을 기록한 ‘엔딩 노트’가 인기를 끌었다. 2009년 이전부터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변화하고 있었고, 이런 현상에 매스미디어가 ‘종활’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기무라·안도, 2018).
일본판 웰다잉, 종활이 등장한 배경으로 5가지를 들 수 있는데 먼저 가족 구성의 변화, 즉 1인 세대, 독거 고령자의 증가이다. 미혼, 사별 등으로 혼자 살거나, 자녀가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어 자신의 마지막을 의지하기 어려운 고령자가 많아진 탓이다. 일본의 독거노인 가구는 2019년 기준 671.7만 세대이다. 여성의 독거노인 비율이 65%로 남성 독거노인에 비해 2배가 높다. 가족 구성의 변화는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일본 사람들의 성향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종활이 빠르게 현실성을 띠게 되었다. 나카노(2017)는 종활을 이야기할 때 ‘폐(弊), 부담, 수고’라는 3개의 키워드가 빈번히 등장한다며 자녀나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생각이 종활의 확산 요인이라고 강조한다.
고령화의 심화도 종활의 배경이다. 죽음을 현실로 느끼는 고령자들이 증가하고, 마지막을 의탁할 자녀들도 동반 고령화하면서 종활의 필요성이 커졌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연명치료, QOL(삶의 질) 등 종말기 의료에 대한 여러 가지 선택지가 증가한 것도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도록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죽음을 터부시하지 않는 고령자들이 증가한 것도 종활 활성화에 기여했다. 일본 베이비붐 세대는 1947~1949년에 태어난 약 700만 명으로, 덩어리지어졌다고 해서 ‘단카이세대’로 불린다. 종활이 확산하기 시작하는 2010년대 초는 이들이 65세 고령자로 진입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사생관의 변화로 장례 방식, 장묘 형태, 수의를 고를 때 나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려는 모습이 나타났다(中野敬一, 2017).
3.11 대지진의 참사, 죽음이 곁으로 다가와
2009년 출생한 종활은 이듬해 ‘유행어 대상’에 진입하면서 존재를 알린다. 이후 2011년 3월, 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북 대지진의 참사는 일본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함께 죽음이 바로 곁에 있음을 각인시켰다. 이 해에 종활카운슬러협회 등 다양한 종활 단체가 출현했고, 각지에서 종활 강좌가 생겨났다. 정부(경제산업성)도 ‘안심과 신뢰가 있는 라이프엔딩 스테이지 창출을 향해(2011)’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웰다잉 관련 서비스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각종 전문 서적과 핸드북 등 출판물이 나오고 영화 상영이 잇따르면서 2012년 드디어 일본 유행어 대상 톱 10에 등극한다. 종활 전문가 고타니(2018)는 이를 두고 종활이 시민권을 획득했다고 평했다. 이후 종활은 상속, 재산정리, 연명치료, 간병, 치매, 유품 정리까지 폭넓게 끌어안으면서 범위를 넓혔고, 2015년에는 관련 기업들을 한자리에 모은 엔딩산업전(ENDEX: Endding Expo)이 성황리에 개최되면서(200개 사 참여, 2만 명 방문), 퓨너럴(funeral) 비즈니스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종활 4대 부문, 여생 설계, 생전 정리,장례 장묘 준비, 엔딩 노트
종활은 여생의 생활설계, 생전 정리, 장례와 장묘의 준비, 엔딩노트 작성 등 4대 부문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생(餘生)의 설계는 종말기 거주 형태, 즉 자택에서 보낼지 고령자시설에서 보낼지 결정해두고 준비하는 것이다. 간병 및 돌봄에 대한 희망, 연명치료에 대한 의사표시를 분명히 표시해 두는 것도 포함된다. ‘생전(生前) 정리’는 재산이나 소지품 정리, 상속 재산의 처분 등이 해당한다. 유언장 작성이 가장 중요한 생전 정리이다. 최근에는 디지털 유품의 처리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어떤 장례식을 원하는지, 장례식에 누구를 부를 것인지, 묘지와 묘석, 수의, 영정사진 등은 어떻게 할 것인지는 종활의 대표 항목이다. ‘엔딩 노트’는 종활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기 때문에 법적 효력은 없지만 종활 계획서로서 중요한 활동이다. 엔딩노트에는 △가족·친척·친구의 정보(가계도, 입원이나 사망 시 연락했으면 하는 친구 지인) △의료·간호에 관한 희망(연명 조치나 종말기 의료·장기기증 등) △재산 정보 △장례·매장 희망 △기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 등을 기록한다.
종활의 확산은 일본 고령자들의 죽음 관련 라이프스타일을 바꿔가고 있다. ‘생전 계약(生前契約)’이라는 게 있는데, 자신의 사후에 필요한 수속, 절차 등을 살아있을 때 미리 계약해 두는 것을 말한다. 독거노인이 생전에 장례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의 사후 절차를 위탁하는 것이다. 장례뿐만 아니라 신원보증이나 재산관리에서부터 안부 확인이나 간병과 같은 일상생활도 서포트해 준다. 반려견 케어, 성묘 대행까지 서비스 내용에 포함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노인시설이나 병원들이 고령자의 입주나 입원 시에 신원보증인을 요구하고 있다.
미츠이스미토모 신탁은행은 2020년 4월부터 ‘1인 신탁’이라는 생전계약 신탁상품을 선보였다. 돌봐줄 가족과 친인척이 없는 독신자를 대상으로, 생전에는 주로 안부 확인, 사후에는 엔딩노트에 기재된 희망에 따라 서비스한다. 수탁 금액은 300만 엔 이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령자가 주요 고객이다. 유통그룹 ‘이온’은 2016년부터 ‘이온 라이프’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온 센터가 가족을 대신해 신원보증인이나 긴급 연락처 응대를 맡고, 긴급 입원 시 절차를 대행해준다. 주 1회 안부 확인과 전화로 건강 상담도 한다.
종활 사이트 가마쿠라신쇼(鎌倉親書)의 ‘좋은 생전계약 서비스’는 기본요금 25만 엔 정도의 저가형 서비스로, 보험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 등의 반납과 사망신고, 납세나 연금 신고, 부고 연락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우주 장례식 치르고, 데스카페 가고…
‘우주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들도 있다. 미 셀레스티스(Celestis)라는 업체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인공위성에 고객의 유골을 탑재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인공위성의 위치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할 수 있어 상공을 올려다보면서 언제라도 고인의 명복을 빌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의 엔딩박람회에서 우주장(葬)이 일본 고령자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요금은 50~95만 엔. 고가인데도 적잖은 예약이 성사됐다고 한다.
타워형 납골당의 등장도 종활이 낳은 퓨너럴 비즈니스의 하나이다. 이 납골당은 주차 빌딩처럼 번호나 카드를 대면 타워에 비치된 납골이 참배 부스로 자동 이동되면서 참배하는 방식이다. 핵가족화로 가족묘가 사라지고, 후대에 조상의 묘지 관리를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 ‘납골 빌딩’을 출현시켰다. 먼 시골의 납골당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묘비 청소 등 관리 부담도 없고, 비용마저 저렴한 타워형 납골당은 인기가 많다.
일본에는 ‘묘 친구(墓友)’가 있다. 같은 장소에 납골묘를 마련한 고령자끼리 교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저세상을 함께 준비하는 동창생인 셈이다. 납골 회사가 묘 친구들의 모임을 주선한다. 묘 친구들은 매년 벚꽃이 필 즈음 한자리에 모여 시를 낭송하거나 애도식을 하고 먼저 간 묘 친구의 명복을 빌어준다. 친구들끼리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지 알게 돼 자신의 죽음을 정리하는 데 힘이 된다고 한다. 카페에서 커피나 다과를 즐기면서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스 카페(Death Cafe)란 곳도 있다. 여러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현재의 삶을 되돌아보자는 것이 데스 카페의 취지이다. ‘죽음 준비 교육장’은 2011년 대지진 이후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지자체의 엔딩플랜 서포트 사업
다사사회, 초고령사회, 무연(無緣)사회 현상은 일본 지자체에 독거 고령자 종활 지원을 강제하고 있다. 간병의 사회화를 넘어 임종(죽음)도 사회가 떠안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중에 15만 엔밖에 없습니다. 화장해서 무연묘를 만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를 거둬줄 사람이 없네요. 죄송합니다.’
2015년 초 요코스카(横須賀) 시에서는 고독사 한 노인이 남긴 쓸쓸한 ‘생전 편지’가 공개되면서 충격을 줬다. 지자체가 독거노인들의 장례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면서 요코스카 시는 그해 7월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독거 고령자를 대상으로 사후 절차를 지원하는 ‘엔딩플랜 서포트 사업’을 시작했다. 시청에 담당 창구를 두고 고령자의 희망에 따라 장례업체와 생전계약을 체결하도록 중개해 준다. 비용은 20만 6,000엔(2016년 기준) 정도. 시는 예산으로 장례비용을 일부 지원해 준다. 사업 배경에는 급증하는 ‘무연 유골’ 처리 부담을 생전계약 지원으로 줄여보겠다는 뜻도 있다.
2018년 5월부터는 ‘종활 정보 등록 전달 사업’(나의 종활 등록)으로 확대했다. 경제적 형편과 관계없이 시민이면 종활 등록은 누구나 가능하다. 장례나 납골은 자유롭게 계약 받고, 성명이나 주소, 긴급 연락처나 주치의 등의 종활 정보와 함께 등록해 두고 만일의 경우 사전의 본인 의사에 따라 사후 절차를 진행한다.
가나가와현(神奈川県) 야마토시(大和市)는 독거노인들의 종활지원 사업을 선구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1인 세대 종활을 지원하는 전용 창구를 설치하고 종활 컨시어지(집사) 제도를 운영, 지역 고령자들의 웰엔딩을 지원하고 있다. 종활 컨시어지는 장례·납골 이외의 방 정리나 유품 정리, 상속 재산의 처분 등 다양한 상담도 한다.
‘죽음의 사회화’가 필요한 시대
일본 종활의 모습이 우리나라 웰다잉의 미래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양국은 사생관이 다르고 가족 관계나 고령화 정도도 차이가 작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종활의 등장 배경인 가족 관계의 소원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 독거 고령자의 증가 등은 한국의 현재이기도 한다. 최근 국내 웰다잉을 통한 주체적인 죽음에 대한 논의가 확산하고 있는데, 일본의 종활이 참고 사례가 될 만하다.
매스컴에서 붙여준 ‘종활’이라는 용어가 일본의 웰다잉 문화에 주체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듯이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에는 매스컴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본판 웰다잉이 ‘종활’이라는 용어로 시민권을 획득한 데 반해 국내에서 ‘웰다잉’이라는 용어는 비(非) 시민인 상황이다. 웰다잉이라는 용어의 대중적 확산에 매스컴의 역할이 요구된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종활의 사업화 가능성 보고서가 종활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의지를 보여주자 지자체는 물론이고 민간 기업이 종활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섰듯이, 웰다잉과 관련한 당국의 정책 의지는 웰다잉의 활성화에 필요불가결한 부분이다.
혼자 죽는 시대가 일반화하는 상황에서 모두가 안심하고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사회의 구축이 필요하다. 일본의 개호보험,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통해 간병이 사회화한 것처럼 다사사회에서는 죽음의 사회화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일본 지자체들이 독거 고령자 등을 대상으로 생전 계약 지원 등 웰다잉 정책을 펼치고 있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데스카페 등 죽음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확대함으로써 죽음의 터부에서 벗어나려는 일본의 모습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요즘 일본에서 종활이 너무 상업화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김웅철
매일경제TV 국장
참고문헌
• 統計トピックス 「統計からみた我が国の65歳以上の高齢者」 (2022.9).
• 「マス・メディアにおける終活のとらえ方とその変遷 ─テキストマイニングによる新聞記事の内容分析―」, 木村由香,安藤孝敏, 技術マネジメント研究, 2018.
• 「終活」 ブームの背景と課題ーとくに葬儀や墓に関する問題をめぐってー, 中野敬一. 女性学評論, 第31呉 2017.3. 神戸女学院大学 文学部 相互文化大学 教授.
• 「マス・メディアにおける終活のとらえ方とその変遷 ─テキストマイニングによる新聞記事の内容分析―」, 木村由香,安藤孝敏, 技術マネジメント研究, 2018.
• 「死の社会化」への提言. 小谷みどり. LIFE DESIGN REPORT, 第一生命経済研究所 主席研究員. 2018.4.
•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김웅철. 페이퍼로드. 1997
• 「死の社会化」への提言. 小谷みどり.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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