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세계 각국은 ‘새로운 국제이주의 시대’(Massey, 2020)에 대응하여 이주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정책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각국 정부는 국제이주의 근본적 원인, 특히 국가별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불평등을 깊이 이해하는 연구,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확한 정책목표와 구체적 개입 계획을 필요로 하고 있다. 특히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지 못하고, 경제적 불평등도 해소하지 못한 많은 국가들은 국제이주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관리해야 국익을 증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체제는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소득5분위배율(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소득보다 몇 배 높은지)과 자산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순자산5분위배율은 2024년 기준으로 각각 5.72배, 128.66배(통계청, 2023)에 달했다.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청년들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대응으로 결혼과 출산을 인생의 선택지에서 배제하고 있고, 그 결과 한국사회는 초저출산의 지속, 생산가능인구의 급감, 약 1,690만 명에 달하는 1·2차 베이비붐 세대(1955~1974년 출생)의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부양 부담 증가라는 인구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이재호, 강영관, 조윤해, 2024).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과 인구 문제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한국사회는 지속가능성을 위협받고, 더 나아가 심각한 사회적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회통합을 강화하는 정책이 필수적이다. 특히 한국사회는 다문화, 이민, 난민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법을 모색하고, 기존 다문화정책에 대한 성찰적 고민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한국사회가 다문화정책을 성찰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인구적 측면에서 한국은 이미 다문화사회로 진입했다. 다문화사회를 규정하는 여러 기준 중 하나인 OECD 기준에 따르면, 체류외국인이 총인구의 5%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 이를 다문화사회로 정의할 수 있다(정현주, 2020). 2024년 현재 국내 체류외국인은 총인구 대비 5.2%(약 265만 명)에 달하고(법무부, 2024), 이를 고려할 때 한국은 인구적으로 이미 다문화사회화 되었다고 간주할 수 있다. 특히 2024년 기준 결혼이민자는 18만 명(법무부, 2024)이고, 이 중 약 80%인 14만 4천 명이 결혼이주여성으로 추산된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4). 국내 체류외국인의 비율은 산업 전반에 걸친 노동수요를 내국인만으로 충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이규용 외, 2015, 2024).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한국사회는 머지않아 체류외국인이 총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완연한 다문화사회’(정현주, 2020)가 될 가능성도 크다.
둘째, 정책적 측면에서 지난 20년간 시행해 온 다문화정책이 형해화(形骸化)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다문화정책, 특히 결혼이민자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가족 정책은 2006년 ‘여성결혼이민자가족의 사회통합 기본대책’을 시작으로 본격화되었다(양경은, 노법래, 2020). 이후 ‘다문화가족지원법’(2008년)이 제정되었고, 1차(2010년), 2차(2013년), 3차(2018년), 4차(2023년)에 걸쳐 다문화가족 지원 기본계획이 수립(양경은, 노법래, 2020)되는 등 한국 다문화정책은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다문화가족의 사회권적 시민권과 복지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김규찬, 2024; 정장엽, 정순관, 2014; 정현주, 2020)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다문화정책 논의가 미성숙하고 답보 상태에 놓인 이유에 대해 다양한 비판이 존재하지만, 그 공통된 지적은 ①철학적 가치기반의 미약함과 ②정책실천을 위한 공동체적 합의의 부재이다. 첫째, 철학적 가치기반의 부재 측면에서 한국 다문화정책은 권리지향적 ‘차별시정’(김선희, 전영평, 2008)이 아닌 관리지향적 ‘동화주의’(정장엽, 정순관, 2014)와 ‘자문화중심적 도구주의’(서덕희, 2013)에 바탕을 두고 있다. 관리지향적 관점은 다문화정책이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을 최소한으로 보호하고, 이들을 한국 문화에 동화시킴으로써 ‘가족주의적 정서’를 보전하고, 국내산업의 인력난을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즉,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협소한 의미의 ‘가족유지적 인구관리정책’(김선희, 전영평, 2008)으로 정립되어 왔다. 이는 저출산정책이 실패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인구정책으로 포장된 사회정책의 양가적 성격’(국회연구조정협의회, 2023)과도 유사하다.
결과적으로 다문화정책에 대한 관리지향적 접근은 다문화가족을 포함한 보다 광범위한 이민자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중의 반발을 피하기 위한 ‘비난회피 전략’(양경은, 노법래, 2020)으로 작동해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국 다문화정책이 ‘가족유지와 인구관리’(양경은, 노법래, 2020)라는 제한된 기능적 목적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다문화가족의 권리 신장과 복지 증진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변화하는 인구구조를 반영하여 실효성 있는 다문화정책을 마련하고, 기존 정책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한국의 다문화정책 개혁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미국의 이민정책 사례가 주는 함의와 통찰이 무엇인지 검토하고자 한다.
다문화정책의 현황
한국 다문화정책의 현황과 과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먼저 다문화정책이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다문화’라고 하는 복합적이고 미묘한 개념과 ‘정책’이라는 추상성이 강한 개념이 결합된 만큼 이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선행연구(김미나, 2009; 김정선, 2011; 남기범, 2015; 양경은, 노법래, 2020; 윤인진, 2019; 심승우, 2022)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다문화정책은 학술적 측면에서 ‘다문화’ 또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연구자의 이론적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고, 정책·실천적 측면에서 다문화정책으로 분류되는 정책들의 지원대상과 범위, 지원액 결정과 같은 문제가 정책담당자의 의지와 이해관계자의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이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행연구의 논의로부터 도출된 정의에 따르면, 다문화정책은 협의적 의미에서 결혼이민자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정책’(양경은, 노법래, 2020)으로 정의된다. 다문화가족은 한국국적자와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 특히 결혼이주여성과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김정선, 2011)을 의미한다. 한편 다문화정책은 광의적 의미에서 이민자와 난민을 포함한 이주민 전체에 대한 사회통합 정책(길강묵, 2011; 김규찬, 2024)으로 정의된다. 광의의 다문화정책은 이민과 난민정책을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다문화정책의 현황을 보면, 한국에서 다문화정책은 주로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정책으로 발전해 왔다(양경은, 노법래, 2020). 2006년 ‘여성결혼이민자가족의 사회통합 기본대책’ 수립, 2008년 ‘다문화가족 지원법’ 제정 이후 정부는 5년 단위의 다문화가족 지원 기본계획을 수립해 왔다. 현재 다문화가족을 위한 지원체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한국어 교육, 가족상담, 자녀 교육 지원, 취업 연계와 같은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김선숙, 조소연, 진재찬, 2024).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다문화가족의 실질적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김선숙 외, 2024). 결혼이주여성을 중심으로 한 정책기조가 유지되어 이주노동자, 난민 등 다양한 체류외국인에 대한 체계적 대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김정선, 2011; 양경은, 노법래, 2020; 정현주, 2020). 따라서 한국 다문화정책은 보다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사회통합을 목표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한국 다문화정책 재편을 위한 과제는 4가지 차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정책대상의 차원에서 협소성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김준식, 안광현, 2012; 양경은, 노법래, 2020). 결혼이민자 중심에서 탈피한 포괄적·권리지향적 사회통합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 정책관점의 차원에서 동화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 이주민의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하는 접근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김규찬, 2024; 심승우, 2022). 현재 다문화정책은 한국사회에 다문화가족과 이주민을 적응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이들의 자율성과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정책지원의 차원에서 교육, 의료, 노동시장 접근성에서 이주민이 겪는 어려움과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지원이 법적·제도적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정현주, 2020).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중심으로 한 지원 시스템이 있지만, 실질적인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 필요하다. 넷째, 사회적 인식 차원에서 다문화가족을 포함한 이주민 전체에 대한 내국인의 인식을 개선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손인서, 2023). 한국에서 다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이주민을 향한 차별과 배제가 여전히 존재하므로 다문화 시민교육과 인식 개선을 위한 정책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4가지 차원에서 한국 다문화정책 개혁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 미국 이민정책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함의와 통찰은 무엇인가?
먼저 인구적 측면에서 미국을 살펴보면, 2025년 3월 7일 기준 미국의 총인구는 3억 4,114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전 세계 인구 약 81억 명의 4.20%를 차지한다(U.S. Census, 2025). 미국 내 외국출생자(foreign-born population) 수는 2024년 기준 총인구의 15.6%에 해당하는 5,160만 명이고(Camarota & Zeigier, 2024), 이들의 법적 지위를 보면, 49%는 시민권자, 19%는 영주권자, 5%는 유학생, 취업, 외교 또는 기타 임시비자 체류자이고, 나머지 27%(1,370만 명)은 미등록 이주민(불법체류자)으로 추정된다(Hook, 2025). 이를 한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국내 체류외국인 비율은 총인구 대비 5.2%(법무부, 2024)인 반면, 미국은 15.6%로 약 3배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의 미등록 이주민 비율은 전체 체류외국인의 16.9%(성도현, 2024)인 반면, 미국은 27%로 약 1.6배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수치 비교를 통해 미국은 한국보다 더 높은 체류외국인 거주 비율과 미등록 이주민 비율을 감당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보다 포괄적·체계적인 이민정책이 요구되는 환경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역사적 측면에서 미국을 살펴보면, 미국 이민정책은 크게 세 시기, ①규제적 이민정책(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②포용적 이민정책(1940년대 초반~1980년대 후반), ③새로운 시도 또는 교착적 이민정책(1990년 초반~현재)으로 구분된다(김태근, 2017; Baxter & Nowrasteh, 2022). 첫째, 규제적 이민정책 시기에는 1882년 이민법, 1882년 중국인배제법, 1924년 이민법이 제정되었다(김태근, 2017). 이러한 법령은 ‘이민배척주의’와 ‘인종주의’가 결합된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미국 사회의 주류 가치인 백인-청교도 중심 질서를 보호하는 것이 목표였다. 둘째, 포용적 이민정책 시기에는 1943년 이민법, 1952년 이민과 국적법, 1965년 이민과 국적법, 1986년 이민개혁과 통제법이 제정되었다(김태근, 2017). 이 시기의 법제화는 인종에 따른 차별적 이민정책을 철폐하고, 이민자의 가족 재통합과 전문기술인력 유치 촉진이 목표였다. 현재 미국 이민정책의 기본골격은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김태근, 2017). 셋째, 새로운 시도 또는 교착적 이민정책 시기에는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거치며 이민정책 변화가 소강상태(김태근, 2017)를 보였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2014년 11월 ‘불법이민자 추방유예(Deferred Action for Parents of Americans and Lawful Permanent Residents, DAPA)’라고 불리는 이민개혁 행정명령(제13672호)이 제정되는 변화가 있었다(김현희, 2019). 반면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는 2017년 2월 ‘무슬림 금지(Muslim Ban)’라 불리는 반이민 행정명령(제13769호)이 제정되었다(김영준, 2017). 두 행정명령은 정책기조의 차이가 극명하다. 오바마 행정명령의 목적은 약 400만 명의 미등록 이주민에게 합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었지만(김현희, 2019), 트럼프 행정명령의 목적은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비자발급을 중단하는 것이었다(김영준, 2017).
미국 이민정책의 역사적 흐름을 보면, 이민정책의 축소, 확대, 그리고 교착 상태는 특정 시기의 정치·사회적 환경과 경제적 요인에 따라 변화해 왔음(김태근, 2017)을 알 수 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짐에 따라 공화당과 민주당 중 어느 정당이 대통령직과 의회 다수를 차지하는지에 따라 주요 법안의 통과 여부가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강해졌고(이종곤, 2019), 이로 인해 이민 개혁 입법은 더욱 어려워졌다. 의회의 협력을 얻지 못한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친이민 또는 반이민 정책을 추진했고, 이는 ‘정책기조 널뛰기 현상’을 초래했다(김현희, 2019). 또한 오바마 행정부의 이민개혁 행정명령은 2016년 6월 연방대법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은 2017년 2월 시애틀 연방지방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었다(김태근, 2017; 류기황, 2020). 이러한 사례는 다문화, 이민, 난민정책에서 급진적 개혁이 어렵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은 매우 어려움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미국은 전통적으로 이민자의 나라로서 다양한 출신국의 이주민을 포함하는 포괄적 이민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김영준, 2024). 미국의 이민정책은 단순한 이민자 유입을 넘어, 가족 재결합, 노동시장 충원, 인도적 보호와 같은 다양한 목적을 고려하여 정책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국 이민정책은 ①가족이민, ②취업이민, ③난민·망명자 보호로 구성되며, 시민권 및 영주권 취득 절차가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김태근, 2017). 첫째, 가족이민은 시민권자와 영주권자의 가족을 초청할 수 있는 제도이고, 가족 중심의 사회통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미국, 캐나다, 호주와 같은 ‘전통적 이민국가’ 중에서 미국은 가족이민에 중점을 두는 대표적 국가이다(이창원, 2017). 둘째, 취업이민은 고급기술인력부터 비숙련노동자를 포함한 다양한 직군의 이민을 허용하는 제도이고, 노동시장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남부현, 박민희, 2023). 또한 미국의 취업이민정책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 또는 잠재적 기능으로서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분석한다(Massey & Pren, 2012). 즉, 미국 취업이민정책은 농업, 건설업과 같은 산업에 저임금의 유연한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여 경제성장에 기여해왔다(Krugman, 2024). 셋째, 난민과 망명자 보호정책으로 난민수용프로그램(U.S. Refugee Admissions Program, USRAP)이 있다(Kerwin & Nicholson, 2021). 이 프로그램(USRAP)은 1980년 제정된 난민법(Refugee Act of 1980)에 근거하고, 연방정부, 국제기구, NGO가 협력해 난민을 심사하고 수용하는 체계적인 절차를 가지고 있다(Bruno, 2012, 2018). 또한 연간 난민 수용 한도(presidential determination)는 미국 대통령이 매년 결정하는데, 2025년은 최대 12만 5천 명까지 난민을 수용할 계획이라고 한다(The White House, 2024).
복지적 관점에서 미국 이민정책의 장점(남부현, 박민희, 2023; 류기황, 2020; 최서희, 2024)은 첫째, 이민정책의 대상포괄성이 높다. 미국은 다양한 비자 프로그램을 통해 숙련 및 비숙련 노동자, 유학생, 난민 등 다양한 계층의 이민자를 수용하고 있다. 또한 특정 직종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고용 기반의 이민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둘째, 이민정책의 관점이 다문화주의적 접근에 기반하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하며, 사회통합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운영한다. 공공기관에서 다문화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다양한 언어 서비스와 문화적 고려를 정책에 반영한다. 셋째, 이민정책의 초점이 이민자의 권리 보장에 있다. 미국은 시민권과 영주권 취득 절차를 통해 이민자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며, 차별금지법을 통해 이민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정책에서 3가지 주요분야인 국경안보, 불법이민자, 이민혜택에서 개혁에 대한 다수 여론의 비판과 그로 인한 개혁 실패(김영준, 2024), 트럼프 행정부 2기에 불법이민자에 대한 ‘대량추방(mass deportation)’이라는 보수적 이민정책의 재등장(Oliphant & Copeland, 2025)으로 볼 때, 향후 미국 이민정책의 폐쇄성이 강화될 것으로 예측된다(김영준, 2024). 폐쇄적 이민정책은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감소시키고, 사회통합에 부정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미국 이민정책이 한국 다문화정책의 재편에 주는 함의는 첫째, 이민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포괄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다문화정책이 결혼이주여성 중심에서 벗어나 이주노동자, 유학생, 난민 등 다양한 이주민을 포괄하도록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다문화주의적 접근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미국과 같이 이주민의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교육과 공공서비스에서 다문화적 요소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셋째, 법적·제도적 개선이 실질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주민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강화하고, 영주권과 시민권 취득 절차를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넷째, 사회통합 프로그램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사례처럼 이민자가 안정적으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언어 교육, 직업 훈련, 지역사회 연계를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한국이 다문화사회에 대비하여 성숙한 사회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국 다문화정책이 미국의 이민정책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의 이민정책의 성공적인 요소들을 참고하여 보다 포괄적이고 실질적인 법적·제도적 개혁방향과 내용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나가며
한국 다문화정책의 과제
한국사회는 심각한 불평등과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라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고, 더불어 다문화, 이민, 난민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법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사회는 변화하는 인구구조를 반영한 보다 실효적인 다문화정책을 마련하고, 기존 정책을 혁신하는 방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협의적 개념의 다문화가족을 중심에 두고 이주민의 삶과 복지에 대한 동화주의적·도구주의적 접근방식을 통해 다루어왔다는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새로운 대안으로서 다문화정책은 다문화가족뿐만 아니라 외국인노동자, 북한이탈주민, 조선족·고려인 동포, 유학생, 난민 등 다양한 이주민집단을 포괄해야 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권 보장과 실질적 권리 보장을 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주민 집단에 대한 정책의 포괄성(대상 확대)과 지원의 관대성(실질적 보장)을 동시에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한국 다문화정책은 정치철학적인 차원에서 ‘관리지향적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가 아닌 ‘권리지향적 비판적 다문화주의’를 핵심가치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비판적 다문화주의는 ‘당구공 모델’(단순한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는 방식)을 넘어 ‘완전주의적 모델’(사회적 권력관계와 구조적 불평등을 문제로 삼고 이를 변화시키는 방식)로 실천되어야 한다(심승우, 2022). 이는 단순한 ‘경제적 인종주의’나 ‘관용(똘레랑스)’과 같이 차이와 다양성이 단순히 병립하고 공존하는 수준을 넘어, 이방인과 소수자의 목소리가 적극 경청되는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심승우, 2022).
한국의 다문화정책을 고민하는 정책실천가들은 미국 이민정책 사례에서 배울 점과 경계해야 할 점을 신중히 선별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한국 다문화정책이 껍데기뿐인 수사적 전략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회통합 전략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다문화정책을 포함한 이민·난민정책 전반을 포괄적이고 체계적이며 실효성 있게 정립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 이상 피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핵심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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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치호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