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제20호 [특집] 사회참여

노년기 사회참여 관점에서 바라본 노인일자리 사업의 의미와 가치

전용호 국립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참여 #사회적관게망
무료하고 외로운 노인
전통적으로 노인이 되면 4가지 고통(4苦)을 겪는다. 점차 할 일이 없어지면서 일상이 무료해지는 무위고(無爲苦), 사회적 관계망이 축소되면서 외롭고 고립되는 고독고(孤獨苦), 노화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는 건강고(健康苦), 경제활동의 축소로 인해서 가난해지는 경제고(經濟苦)를 겪게 된다. 그간 우리 사회가 여러 측면에서 발전해왔지만 여전히 많은 노인들이 ‘4고(四苦)’를 겪고 있다.
특히 은퇴로 인한 경제 활동과 사회 참여의 감소로 인해 쉽게 무위고와 고독고라는 이중위기에 처한다. 노인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고, 의미 없는 하루가 반복된다”며 무료함을 호소한다. 무위고는 퇴직 및 역할 상실, 사회적 책임감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무위고는 단순히 한가함이나 여유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료한 일상에서 무력감을 느끼거나 사회와 가족에 기여할 수 없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노인들은 “평상시에 말할 사람이 별로 없다. 외롭다”라며 고독고도 자주 말한다. 고독고는 가족과 이웃을 비롯한 사회적 관계 약화, 지역사회 참여 기회 상실, 상호 돌봄 관계의 부재 등으로 인해 나타난다. 노인이 겪는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을 넘어, ‘사람과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상실감을 낳기도 한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적지 않은 노인들이 무료하고 외로운 일상에 직면해있다. 이는 노인의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동시에, 신체와 정신 건강의 악화, 나아가서 고독사와 자살의 위험까지 내모는 등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사회참여의 실질적 기회를 제공하는 노인일자리 사업
이처럼 무료하고 외로운 노인들이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면 어떤 경험을 할까? 노인인력개발원에서 최근에 실시한 연구결과(배재윤 외, 2023, 2024)를 살펴보면, 인터뷰에 참여한 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일자리 사업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첫째,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이 생겼고 정기적인 일자리 사업 활동을 통해 삶의 ‘활력’이 생긴다. 규칙적인 일정이 생기면서 생활의 리듬이 잡히고 중심이 잡혀진다. 즉, 노인일자리 사업 활동 시간에 맞춰서 자신을 꾸미고, 활동을 위해서 집밖을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는 사회참여가 늘어난다. 기존의 무료한 일상에서 탈피해서 일정한 시간에 정기적으로 규칙적인 활동을 하면서 삶에 리듬이 생기고 활력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자리 사업의 동료들을 만나서 서로 대화하고 몸을 움직여서 일을 하는 것이 노인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준다. “할 일이 없을 때는 하루를 의미 없이 보냈는데, 이제는 오늘 해야 할 일이 있고, 누군가 나를 기다린다 생각하니 하루가 기대된다”고 말한다. 몸을 움직이면서 사람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삶의 생동감이 돈다고 한다. 이처럼 노인일자리 사업은 역할 감소로 인해 할 일이 없어지는 노인에게 할 일을 제공하고, 일을 통해서 사람들과 만나서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사회참여의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인의 무위고가 점차 사라지게 된다.
둘째, 노인 일자리 사업은 일상을 나누고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노인이 되면 각종 사회적 역할의 감소로 인해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줄어들거나 가족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경험하는 답답하거나 힘든 감정을 나눌 사람도 별로 없다. 이는 노인을 위축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노인은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서 교류하면서 대화를 통해서 일상의 어려움을 솔직히 나눌 기회를 갖게 된다. 일자리 사업의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식이나 친구와의 갈등과 외롭고 힘든 일상 등을 나눌 수 있다. 서로가 정서적으로 위로해주고 인정(認定)하고 지지해준다. 이와 함께, 서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노인들은 생활에 유용한 정보도 얻고 제공하면서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한다. “삶의 지혜나 여러 가지 필요한 정보나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노하우나 이런 걸 다 알려주신다”고 노인들은 말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생기고 신뢰가 구축되면서 소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형성된다. 노인의 일상과 삶의 소중한 지지체계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노인의 고독고가 사라지는 것이다.
셋째, 노인 일자리 사업은 사회와 연결되면서 소속감을 회복하게 만든다. 노인들은 평상시에는 사람들과 소통할 일이 별로 없지만 일자리 사업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속적으로 대화와 교류를 할 수 있게 된다. 노인들은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다른 노인들과 함께 일하면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소속감을 느껴 좋습니다.”라고 말한다. 일자리 사업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노인들은 과거에는 사회에서 ‘분리’된 ‘소외’된 존재로 느껴졌는데, 일자리 사업을 통해서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일자리 덕분에 집에만 있지 않고 다양한 이웃들과 교류하면서 내가 사회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라고 말한다. 노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분절되지 않고 점차적으로 통합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넷째, 노인 일자리 사업은 노인들이 자긍심을 갖고 자존감을 높아지게 만든다. 일자리 사업은 공익성에 기반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민이나 기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사업이 진행된다. 일자리 사업을 통해서 지역주민들에게 크고 작은 일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노인은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노인의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면 사람들이 거듭 고맙다고 감사의 표시를 하거나 노인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는 등의 경험을 하면서 일자리 사업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노인들은 뿌듯한 보람을 느끼고 자존감도 올라간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에 도시락을 배달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노인은 어려운 이웃을 내가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나도 사회에서 역할을 하는 필요한 존재라며 당당한 인식을 갖게 된다. “내가 아직 사회에 필요하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된다”며 동료와 안부를 나누고, 사회에서 내가 쓸모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이처럼 노인들은 작은 일이지만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자긍심과 보람을 느끼면서 자존감이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노인 일자리 사업은 사회에 만연한 연령차별주의(ageism)를 완화하는데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사회에는 고령화 위기 담론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노인인구의 증가로 인해서 보건의료와 복지의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노인이 사회적인 기여를 하지 않고 젊은 세대에 부담이 되고 경제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노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사회참여 활동을 하게 되면서 젊은 사람을 비롯해서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줄어들 수 있다. 실제 일자리 참여하는 노인들이 열심히 지역사회에서 활동을 하면 젊은 세대들도 감사해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한다. 지역사회의 곳곳에서 노인들이 크고 작은 일들을 하면서 어려운 이웃과 주민들을 마음으로 돕고 지원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는 것이다. 이같은 노력들이 모아져서 노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고 우리 사회가 연령에 의해서 분절되지 않고 통합적인 사회로 나아가는데 기여를 할 것이다.
더 나은 노인 일자리 사업을 향하여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노인일자리 사업은 지난 20년간 노인의 사회참여를 확대 제공하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소중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노인들이 사회적으로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특히 노인들은 무위고와 고독고 등의 전통적인 사회적 위험으로 어려운 삶을 영위하고 있고 실제 현장에서는 높은 자살률과 고독사와 같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은 노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제공하고,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을 확장 시키는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 개별화되고 개인주의화되는 세상에서 고립되지 않고 사회와 연결시켜 주는 ‘가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한국 사회는 더욱 개별화되고 개인주의화 되는 동시에 AI로 인한 디지털 중심 사회로 변모하면서 노인들이 더욱 어려운 여건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 및 확대함으로서 네트워크와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20년을 내다보면 노인의 삶을 유지하고 삶의 활력과 의미를 부여하는 일자리 사업으로 거듭나도록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노인 세대로 편입되면서 이들의 우수한 인적 자원과 경험을 활용하지 못하는 사회 지체 현상을 해소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전문적인 일자리를 적극 창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노인들에게 더욱 사랑받고 신나서 일할수 있는 사업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다.
참고문헌
• 배재윤, 김윤영, 박상현, 전용호. (2023). 공공형 노인일자리 참여자 경험 연구. Korea Labor Force Institute for the Aged.
• 배재윤, 박상현, 전용호. (2024). 노인일자리와 활동적 노화(Active aging). Korea Labor Force Development Institute for the A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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